오피니언 사외칼럼

[현정택의 세상보기] 울림 없는 새해 경제정책 방향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주52시간 확대 등 문제인식 없이

'나를 따르라'식의 구호만 나열

이념 아닌 현실 고려한 정책펴야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부가 지난주 오는 2021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 속에서 대면 보고 회의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5개 부처 장관이 결과를 합동 브리핑까지 했는데 언론 반응은 시큰둥했다. 150쪽이 넘는 ‘새해’ 경제정책의 상당 부분이 이미 발표됐거나 실효성이 없는 대책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비 확대를 중요 정책 목표로 삼고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 고효율 가전 기기 구매 환급 재개, 신용카드 소득공제 확대 등 3종 소비 진작 세트를 내놓았다. 그런데 자동차 개소세 인하는 지난 2018년부터 시행한 제도로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자주 바꾸는 상품이 아닌 자동차 구매에 대한 세금 혜택의 소비 촉진 효과가 미미하다고 했다. 가전 기기 구매 환급 예산은 올해보다도 적게 책정됐으며 신용카드를 400만 원 더 쓰면 세금 혜택이 고작 5만 원 정도라고 한다.

고용 증진은 위기가 아니더라도 매우 중요한 대책인데 이에 관련해 정부는 104만 개의 직접 일자리를 만들 계획으로 약 절반인 50만 개를 내년 1월 중 시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 43만 개가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돼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연말연시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될 정도로 강력한 방역 조치가 시행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감염병에 취약한 노인들 일자리를 엄동설한에 수십만 개나 급조한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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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경제정책 방향은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성장률 1위, 경제 규모 세계 10위로 한국 경제의 글로벌 위상을 높인 것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빠르고 강하게 회복하겠다는 자신감을 비친다. 이 같은 자화자찬에는 부동산 실패나 탈원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및 근로시간 단축으로 초래된 문제점에 대한 인식은 없다.

정부 자신감과 달리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6%가 올해 경제가 나빠졌다고 하고, 내년에도 비슷하거나 나빠진다는 응답이 72%나 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기업 10곳 중 6곳이 내년 신규 투자와 채용을 올해보다 줄일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정부가 발표한 내용은 한국 경제의 주체인 국민과 기업의 울림이 없는 정책이다. 지금이라도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문 대통령 앞에서 내년 확대 시행되는 주52시간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인력난이 심한 뿌리 산업은 2교대를 3교대로 바꾸기 위한 추가 인력을 구하기 매우 어려우며 조선·건설·기계설비 업종도 이를 도입하면 납기를 맞추기 힘들다고 했다. 진지한 고려가 필요하다.

정부는 내년 공공과 민간투자를 110조 원으로 늘릴 계획을 세우고 설비투자 세제 감면 등을 제시하며 민간 동참을 촉구했다. 그러나 경제계는 국회에서 통과된 상법 개정, 공정거래법 개정, 금융그룹감독법 제정 법률 등의 보완이 먼저라고 답했다. 이 법들의 장단점을 따지기에 앞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때 꼭 필요한 건지 살펴보고 시행 시기 유예 등 충격을 줄이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입법이 추진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코로나19로 인한 충격 못지않게 기업과 경영자에게 주는 불확실성이 크다. 8개 경제 단체의 간곡한 호소를 정부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정부 경제정책은 구호이지 정책이 아니다. 코로나19로 힘든 한 해를 간신히 버틴 한국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소한 코로나19가 해소될 때까지만이라도 이념이 아니라 현실에 무게를 둔 정책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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