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AOL




닷컴 버블이 막바지로 치닫던 2000년 1월 10일. 인수합병(M&A) 시장에 ‘세기의 딜’이 터졌다. 세계 최대 미디어 그룹인 타임워너와 최대 인터넷 서비스 업체 아메리카온라인(AOL)이 합병을 선언한 것이다. 시장은 설립한 지 17년도 안 돼 1,819억 달러의 매머드 거래를 이끈 AOL의 성장에 탄성을 질렀다.


1983년 ‘컨트롤비디오’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AOL은 처음에는 전화선으로 게임을 파는 평범한 벤처기업이었다. 운명은 1991년 ‘아메리카온라인’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드라마틱하게 바뀐다. 컴퓨터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람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웹 브라우저를 제공하면서 미국의 인터넷 문화를 대중화하는 일등 공신이 됐다. 혁신적인 서비스로 거침없이 이용자를 늘려나간 AOL은 1998년 11월 웹 브라우저의 원조인 넷스케이프를 인수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AOL의 시가총액은 한때 2,000억 달러를 넘어서며 ‘정보기술(IT) 업계의 제왕’으로까지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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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워너와 합병으로 축배를 올린 것도 잠시, AOL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타임워너와 AOL 사이의 문화 차이로 경영권 분쟁을 겪게 되고, 기술 혁신까지 더뎌지자 AOL의 2002년 광고·영업 매출은 1년 만에 40% 넘게 추락했다. 때마침 닷컴 버블이 붕괴되며 AOL은 급격하게 쇠락해 2009년 타임워너에서 다시 떨어져 나갔다. 이후 구글 출신의 팀 암스트롱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고 미디어 기업인 허핑턴포스트를 인수하는 등 활로를 찾았지만 2015년 끝내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에 팔리고 말았다.

미국 투자 은행 웰스파고의 크리스 하비 주식전략책임자가 28일 “테슬라를 보면 1998년(닷컴 버블)이 떠오른다. 테슬라가 기술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쇠락한 AOL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에서는 애플까지 전기차 사업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테슬라가 압도적 기술을 증명하지 못하면 제2의 AOL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잘나가는 대기업이라도 초격차 기술이 없으면 언제든 절멸할 수 있다. 투자자들 역시 기술의 뒷받침이 없이 유동성에만 의존하는 파티는 언제든 끝날 수 있음을 자각할 때가 됐다. /김영기 논설위원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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