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케빈 러드 前 호주 총리 "美, 中 겨냥 CPTPP 복귀...추가협상 없으면 對中관세 유지할 것"

[서울경제 신년 해외 특별 인터뷰]

기술패권 전쟁 여전...화웨이·中 파운드리 제재 철회 가능성 없어

美, 대만·남중국해 등 레드라인에 대해서는 강경노선 이어갈 듯

바이든 정부 北 비핵화에 근본적 회의론...종전선언 확률 낮아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 /러드 전 총리 제공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 /러드 전 총리 제공



제26·28대 호주 총리를 지낸 케빈 러드 아시아소사이어티 회장이 앞으로의 미중 관계에 대해 “전적으로 미국 손에 달렸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의식해 포괄적·점진적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복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중국이 진지하게 2단계 무역 합의에 나서지 않는 한 미국이 기존의 고율 관세를 철폐하거나 1단계 무역 합의를 재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도 3~6개월가량은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전략에 실질적 변화가 있는지 기다릴 것으로 봤다. 러드 회장은 지난해 12월 말 서울경제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만약 미국이 관계를 안정시키기를 원한다면 중국은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대중 정책 과제를 네 가지로 예상했다. 구체적으로 △최악의 상황 회피 △마지노선 설정 △중국과 경쟁 부문 결정 △중국과 협력 사안 정의 등이다. 러드 회장은 “첫째, 바이든은 위기가 위기로 번져 양국 관계가 휘청거리는 것을 피하려 할 것”이라며 “대만과 남중국해를 포함해 미국이 생각하는 레드라인에 대해서는 강경 노선을 유지하는 것이 두 번째”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와 외교·안보·인권 등에서 중국과 전략적으로 경쟁할 것은 어떤 것인지, 기후변화와 금융 등 협력할 부분은 무엇인지를 각각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고려하면 당분간 미중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경제를 포함해 전략적인 경쟁은 계속될 것이고 안보 긴장도 이어지겠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보다는) 더 안정적인 틀 안에서 이뤄질 것”이라며 “대중 정책이 갑자기 흑에서 백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러드 회장은 중국 화웨이와 파운드리 업체 SMIC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 철회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워싱턴의 민주당 의원들과 행정부 관료들은 화웨이의 5세대(G) 이동통신이나 인공지능(AI)을 포함한 민감한 기술에 대한 국가 안보 방침을 바꾸는 데 관심이 없다”며 “두 나라 간 기술 경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점쳤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은 중국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1단계 무역 합의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봤다. 미국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1단계 무역 합의 결과 지난해 미국은 중국에 총 1,417억 달러어치(약 154조 원)를 수출하기로 했지만 11월까지의 실적은 820억 달러에 그쳤다. 이행률이 58%에 불과한 것이다. 중국은 처음부터 목표치가 과도했다는 입장이다. 러드 회장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1단계 합의는 민주당원들의 정치적 지지를 받았다”며 “내 판단으로는 바이든 행정부가 1단계 무역 합의를 재협상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다만 중국 정부가 지식재산권과 국가보조금 등을 다루는 2단계 협상에 나서고 이를 이행할 의지가 명백하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그는 “2단계의 핵심은 중국 국영기업과 외국 기업들 사이의 공정 경쟁”이라며 “이는 중국 정치 경제 시스템의 핵심인데 중국 정부가 협상에 착수한다면 미국이 재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만약 중국이 2단계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면 바이든은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징벌적 관세를 없앨 근거가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추가로 그는 바이든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최대 무기인 반도체를 어떻게 사용할지, 동맹국 기업인 삼성전자와 대만 TSMC에 어떤 요구를 할지가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의 옥죄기에 중국이 먼저 무역 합의를 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지만 그러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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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승리라고 선전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대해서는 “CPTPP에 비해 개방 수준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면서도 “RCEP를 자세히 살펴보면 원산지 규정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 전문가들이 말했던 것보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중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바이든 정부에서도 RCEP 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며 “미국이 RCEP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러드 회장은 미국이 CPTPP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안팎에서는 중국이 포함된 RCEP 타결을 계기로 미국이 CPTPP에 다시 가입해 맞불을 놓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지만 바이든 당선인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펜실베이니아 같은 ‘러스트벨트(낙후된 공업 지역)’의 표를 많이 얻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TPP(CPTPP의 전신)가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협상에서 탈퇴했고 이후 일본 중심의 CPTPP로 재편됐다. 러드 회장은 “현실적으로는 바이든 행정부 내에도 보호무역주의자와 자유무역을 원하는 사람이 함께 있고 일부는 동맹국들의 이익과 지정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나의 기본적인 예측은 미국이 CPTPP에 참여하는 형태”라고 강조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최근 중국이 무역 협상에서 공격적으로 나오는 점도 고려 요소다. 미국의 압박에 부담을 느낀 중국은 CPTPP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7년을 끌어온 유럽연합(EU)과의 투자 협정에 전격 합의했다. 러드 회장은 “시진핑 주석의 참모진은 미국이 있든 없든 CPTPP 가입을 강하게 권할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 없이 RCEP를 타결했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만약 미국의 CPTPP 재가입이 늦어질 경우 (RCEP에서의 성공을) CPTPP에서 재연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바이든 정부 사람들은 북한 정권이 수십 년간 핵 프로그램에 관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왔는지 안다. 근본적으로 회의론이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목표는 북한이 단거리와 중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해 완전한 핵 무력을 갖추는 일로부터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든 팀은 매우 현실적일 것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며 “최우선 과제는 북한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그는 바이든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이 주장해온 종전 선언을 할 확률이 낮다고 본다. 러드 회장은 “바이든 팀 인사들의 속내까지는 모르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우선순위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이며 휴전협정의 미래를 포함한 다른 것들은 부차적”이라고 설명했다.

반중 전선을 구축 중인 미국이 일본과 인도·호주와의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를 확대해 우리나라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두고는 “한국 내에서 논란이 되는 사안을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즉답을 피하면서 “한국의 주된 안보 위협은 북한”이라고만 답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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