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牛鼎)은 조선 시대 국가 제례 때 사용된 종묘 제기 중 하나다. 소 우(牛)자에 솥 정(鼎)자를 쓴 ‘우정’은 삶은 쇠고기를 담는 솥 형태의 제기이며, 왕실 제사를 위해 삶은 고기를 제례 장소까지 옮기는 용도였다. 왕실 제기의 종류가 다양한테, ‘정’은 3개의 발과 2개의 손잡이가 달린 것을 가리킨다. ‘우정’의 그릇 발은 소의 머리와 발굽 모양이고, 뚜껑에는 소 ‘우’자가 새겨 있다. 양고기를 담는 ‘양정’, 돼지고기를 담는 ‘시정’도 각각의 동물 형태에 따라 발 모양이 달랐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이 2021년 소띠 해 신축년을 맞아 조선시대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노동력이자 재산이었던 소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우정’을 이달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정했다고 4일 밝혔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큐레이터가 직접 ‘우정’에 대해 소개하는 동영상을 이날부터 온라인(유튜브)을 통해 소개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종묘에서 사용되던 제기 중 삶은 소고기를 제례 장소까지 옮기는데 사용한 우정(뚜껑 4점과 몸체 5점)을 소장하고 있다. 우정은 국가제례 때 신에게 익힌 고기를 올려 대접하는 절차로 국왕이 친히 진행하는 ‘궤식’과 신에게 바친 고기를 국왕이 다시 받는 절차에 사용했던 솥이다.
“국왕이 관향의 예를 행하면, 전사관은 주방에 가서 가마에 익힌 소·양·돼지고기를 정(鼎)에 담는다. 전사관이 대기하고 있다가 ‘찬을 올리라’는 소리와 함께 정에 들어있던 고기를 소·양·돼지의 순서로 생갑에 옮겨 담는다.”(세종실록 129권 중 ‘궤식’ 부분)
소는 특히 귀한 제물이었기에 종묘제, 사직자 등 가장 중요한 국가 제례에서만 사용됐다. 이 때 사용된 소는 흔한 황우가 아닌 흑우였다. 흑우는 제주도나 거제도에서 키운 다음 국가 가축관리 기관인 ‘전생서’로 보내져 다른 짐승과 섞이지 않도록 별도의 담장 안에서 깨끗하게 관리되다 제사에 사용됐다. 그렇게 마련된 고기는 국가의 번영을 기원한 제례에서 올려졌으며, 궤식 후 왕이 돌려받은 우정에 담긴 고기는 신이 제물에 복을 담아 인간에게 돌려주는 것을 의미했다.
이승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원은 “소를 비롯한 희생은 신과 국왕, 백성을 연결하는 매개체였으며, 우정에는 신에 대한 공경과 신이 내린 복을 아래로 널리 베풂으로써 백성들의 안녕을 바라는 지극한 마음이 담겨 있다”면서 “희생 제례를 통해 풍요로운 나라를 꿈꾼 것처럼 평안한 신축년을 기원하며 새해 첫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우정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부터 진행돼 온 ‘큐레이터 추천 왕실유물’은 전시 학예 연구 인력이 상설전시실 유물 중 한 점을 선정해 관람객과 국민에게 집중적으로 유물 정보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 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를 통해 박물관을 직접 찾지 않아도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