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과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조치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징벌적 세제와 강력한 대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매매 및 전세시장 불안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다주택자들의 매물을 끌어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여기다 오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점도 작용하고 있다. 당정 내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뒤엎는 신호를 줄까 신중한 모습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건축 등 강력한 공급 규제 완화와 병행해 다주택자의 퇴로를 열어줘야 시장이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10일 더불어민주당과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오는 6월부터 적용되는 조정대상지역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정책을 완화하는 방안이 당정 내부에서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있다. 당정의 한 핵심 관계자는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부동산 규제 완화 건의가 있지만 아직 큰 틀의 방향 전환을 할 만한 정책 대안을 내놓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매물 확대도 공급 정책의 일환이라는 인식을 내비쳤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현재 세 채, 네 채, 다섯 채를 갖고 있는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게 하는 것도 정부가 강구할 수 있는 중요한 주택 공급 정책”이라고 말했다.
다주택자들의 양도소득세를 완화해줘 매물을 늘리겠다는 방안은 정부 내부에서 지난해부터 고민했던 부분이다. 수도권 일부 여당 의원들도 비공식 자리에서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정부에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당 핵심 지도부를 중심으로 정책 일관성이 무너지고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모습으로 비쳐 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 테이블 위로는 올리지 못했다. 아직 여당 내에서도 방향성이 잡히지 않았지만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다급해지면 시장을 윽박지르는 정책에서 변화하려는 기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징벌 과세에도 잠김 매물만 늘어
정부는 지난해 다주택자에 대한 최고 세율을 양도세 75%(올해 6월부터, 2주택자는 65%), 종합부동산세 6%, 취득세 12%로 대폭 강화하면서 징벌적 과세로 압박하면 이들이 보유한 매물이 쏟아져 나와 시장 안정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시장 통계는 조세정책으로 잡겠다는 계산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서울경제가 경제 전문가 100명에게 올해 부동산 시장 전망을 묻자 73%가 “시장 불안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전국 아파트 증여는 총 9,619건으로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현재도 양도세 중과로 다주택자의 최고 세율은 62%인 만큼 차라리 버티거나 자식들에게 증여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공급 부족에 따른 ‘패닉 바잉’ 현상 속에 ‘팔면 다시는 못 산다’는 생각에 가급적 물려주려는 움직임으로 인해 매물 잠김 현상까지 나타났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한 방송에 출연해 “현재 세 채, 네 채, 다섯 채 갖고 있는 다주택자들의 주택 매물을 내놓게 하는 것도 정부가 강구할 수 있는 중요한 주택 공급 정책”이라고 밝힌 것은 미묘한 변화를 시사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당정은 강화된 세금으로 인해 갭 투자 세력을 비롯한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집을 팔아야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면 매물을 꺼내도록 양도세 한시 완화 등의 퇴로를 열어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익명의 한 전문가는 “재보선과 임기 말을 앞두고 부동산에서 꼬인 실타래를 풀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며 “과도한 규제와 세금을 낮추고 주택 공급에 대한 신뢰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과조치 연말까지 유예할까
현실적으로 가능한 카드는 오는 6월부터 시행하는 양도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연말 또는 그 이상 유예하는 방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도 다주택자들이 확실히 매물을 내놓도록 시행 시점을 늦추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종부세 대상자가 서울 전역으로 확대되고 세금 부담도 매년 배 이상 껑충 뛰고 있어 여당의 수도권 의원들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랜 기간 보유한 다주택자에게 상반기에 일시적으로 장기 보유 특별 공제를 적용해주는 방안도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2019년 12월 17일부터 2020년 6월 30일까지 조정대상 지역 내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팔면 양도세 중과 적용에서 배제하는 방식의 예외조항을 적용한 바 있다. 다만 시장에 매물을 끌어내려면 유예 정도로는 부족하고 한시적으로라도 파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50%까지 낮춰주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으나 현 정부의 정책 이념으로 봤을 때 불가능해 보인다”며 “최소 지금 수준으로 더 유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래세 완화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 같다는 점도 부담을 더는 요인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유세는 강화하는 방향이 맞고 거래세 완화는 길게 보면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동산 거래세 비중은 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0.4%)보다 3배 이상 높다.
■시행도 전에...정책 후퇴 부담
그렇지만 당정 일부에서는 시행도 되기 전부터 수정한다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인식이 만만치 않다. 여당 핵심 인사들은 집값이 오른 데 따른 양도 차익을 고스란히 갖게 할 수 없다는 시각도 갖고 있다. 거론되는 수준인 중과 유예 조치 정도로 매물이 쏟아져 나와 공급을 크게 늘리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특히 여당은 지난해 총선 전에도 이낙연 대표를 중심으로 1주택자 종부세를 완화하겠다고 강조했으나 구호만 외칠 뿐 실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선거를 앞두고 제스처 정도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따라 차기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일정 부분의 정책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낮춰 거래를 정상화해야 시장이 안정화된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선거를 위해 내렸다 올렸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기재부는 이날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도심 내에서 부담 가능한 주택, 살고 싶은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으나 양도세 중과 완화 방안에 대해서는 검토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세종=박효정·황정원기자 송종호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