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버락 오바마 전 정권의 해제 결정을 5년 만에 뒤집은 것으로,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11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쿠바가 “국제 테러 행위를 반복적으로 지원한다”며 테러지원국 재지정 결정을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쿠바가 콜롬비아 반군과 미국인 도주자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을 지원하는 것 등을 테러지원국 지정의 사유로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지난 1973년 경찰 살해 후 탈옥해 쿠바로 도주한 미국 여성 조앤 체시머드와 2019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경찰학교 폭탄 테러 사건을 일으킨 반군 민족해방군(ELN) 지도자 등을 거론했다.
이번 결정은 임기 내내 대(對)쿠바 강경 기조를 이어온 트럼프 정권이 임기 종료를 불과 9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이뤄졌다. 직전까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는 북한, 시리아, 이란이 올라와 있었다. 쿠바의 경우 1982년 3월에 남미 내란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다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인 2015년 33년 만에 리스트에서 빠졌다. 2014년 12월 미국과 쿠바 정상이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 후 급물살을 탄 해빙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그러나 뒤를 이은 트럼프 정권은 쿠바를 니카라과, 베네수엘라와 함께 ‘폭정의 트로이카’로 규정하며 쿠바와의 관계를 오바마 이전으로 되돌려 왔다. 쿠바로의 크루즈 운항을 금지하고 직항편을 제한하는 등 미국인들의 쿠바행을 막고, 주요 인사들과 국영기업을 줄줄이 제재 목록에 추가하는 한편 쿠바 정부가 몰수한 재산에서 이익을 얻는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가능하게 했다. 지난해 5월에는 국무부가 쿠바를 북한, 이란, 시리아, 베네수엘라와 함께 2019년 기준 미국의 무기수출통제법상 ‘대테러 비협력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쿠바가 이 명단에 다시 오른 것은 2015년 이후 5년 만이었다.
이번 테러지원국 재지정 결정은 취임을 앞둔 조 바이든 행정부에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쿠바와 더욱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자본주의화하는 것이 쿠바의 민주적 변화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경제 및 여행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희망을 시사한 바 있다. 여기에는 쿠바로의 여행과 투자, 송금에 대한 제한 완화가 포함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든 행정부는 쿠바를 다시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할 수도 있지만, 공식적인 검토를 거치면 그 절차가 여러 달 지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이날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은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결정이 “위선적”이며 “정치적 기회주의”라고 맹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