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와 사생아를 죄악시하는 가톨릭 근본주의 문화로 인해 아일랜드에서 9,000명의 아이가 학대 등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일랜드 정부는 공식 사과와 함께 피해를 받은 이들에 대한 보상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스카이 뉴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아일랜드 조사사법위원회는 1922∼1998년 아일랜드의 미혼모 시설에서 사망한 영아 및 어린이들에 대한 5년간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아일랜드의 역사학자인 캐서린 콜리스는 지난 2014년 골웨이주의 투암 마을에서 '봉 세쿠르'(Bon Secours) 수녀원이 운영한 미혼모 시설 '성모의 집'에서 어린이 796명이 묘비나 관도 없이 집단 매장된 사실을 밝혀냈다. 이 시설은 지난 1925년부터 1961년까지 미혼모와 이들의 자녀를 위해 운영됐다. 수녀원의 사망 기록에 따르면 연령별로는 갓난아이에서 최고 8살 어린이까지 포함돼 있었으며 주로 영양실조와 홍역, 결핵과 같은 전염병에 걸려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소식은 아일랜드는 물론 국제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이에 아일랜드 정부는 위원회를 통한 조사를 시작했다. 5년간의 조사 끝에 위원회는 이날 3,0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조사기간 모두 9천명의 영아 및 어린이가 가톨릭 교회나 목사가 운영하던 미혼모 시설에서 사망했다. 이곳에서 태어난 어린이 중 무려 15%에 해당하는 수치다. 해당 사망률은 당시의 평균 사망률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것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시설에서 미혼모들이 수십 년간 "숨 막힐 듯 답답하고 억압적이며 잔인한 여성 혐오적 문화에 부딪혔다"고 밝혔다.
태어난 사생아 중 1,638명은 아무런 법적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 등으로 입양 보내졌다. 미혼모들은 강제로 아이들과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입양을 주선한 기관에 상당한 돈이 주어졌다는 의혹은 밝혀지지 않았다.
미혼모와 사생아에 대한 이같은 학대는 아일랜드의 가톨릭 근본주의와 관련이 있다.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아일랜드에서 미혼모들은 '타락한 여자'로 낙인찍혔고, 출산한 아이들은 입양을 강요받았다. 또 미혼모 자녀들은 열등한 아이로 취급받으며 세례는 물론 교회 묘지 매장을 거부당했다.
콜리스는 스카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많은 어린이가 미혼모와 사생아에 대한 사회의 태도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는 혼외로 자녀를 출산한 여성을 죄악시하는 문화를 낳았다"면서 "당시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강요받았지만, 교회나 지역 사제에 저항하는 말을 하기를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만약 조금의 위생 조치와 보살핌이 있었다면, 많은 아이가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1949년 투암의 시설에서 태어나 5년 반 뒤 입양된 위니플레드 캐멀 라킨은 "이것은 우리의 홀로코스트다. 독일에서 홀로코스트가 있었듯 이곳 미혼모 시설에도 홀로코스트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엄마의 사진을 본 적도, 그녀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다"면서 "인간이 아기와 엄마를 그런 식으로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날 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미홀 마틴 아일랜드 총리는 영향을 받은 이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할 계획이다.아울러 보고서에서 확인된 이들에 대한 재정적 보상과 함께, 아직 매장된 이들의 유해 발굴을 위한 법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지웅배 인턴기자 sedation12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