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오색인문학] 병원보다 갤러리를 더 사랑한 의사

■한국의 컬렉터- 박호길 박내과의원 원장

김종근 미술평론가

첫 근무지가 인사동에 위치한 탓에

진료후엔 중독처럼 근처 갤러리行

부부 함께하며 본격 미술공부 시작

안목 높아지고 컬렉션 질도 좋아져

해외봉사 가서도 미술품 수집 열정

"병원보다 마음 치유공간 더 중요"

몇년전 양평에 부인과 갤러리 오픈

박호길(오른쪽) 원장과 부인 김운선 여사


그의 이름은 박호길, 직업은 내과 의사. 고향은 경상북도 의성.

박호길은 아주 오지 시골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생에서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 연세대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의사가 된 그는 세브란스병원에서 내과 전문의 수련과 군의관 복무를 마친 후 의사 일을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일터는 하필 갤러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종로구 인사동에 있던 혜정병원. 마치 모든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듯이 온종일 진료실에서 시달리다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근처 갤러리와 미술관을 드나들며 그림 사랑과 중독에 빠졌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아니면 이미 어렸을 때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미술에 눈뜨라고 했던 팔자였을까.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인사동에서 동양화 그림 두 점을 사서 집으로 가져갔다.

근데 아뿔싸! 평소 그림에 눈이 밝은 부인 김운선 여사는 직감적으로 이 그림들이 아무래도 짝퉁 같다고 했다. 그랬다. 이러다가는 성격 급한 남편이 애써 벌은 월급을 다 날리겠다는 걱정에 병원이 쉬는 주말이면 부인도 그림 사냥에 투덜거리며 동행했다.

“처음에는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죠. 그런데 함께 미술 작품을 보러 다니다 보니 집사람이 자연스럽게 아군으로 바뀌더라고요.” 1978년 가을 서울 강남구에서 박내과의원을 개원한 내외를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봄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미술관. 독실한 신자로서 매주 일요일 교회를 다녀온 박 원장 부부는 주말이면 이렇게 전시장을 찾았고 나는 자애롭고 소박하고 검소한 부부와 급하게 친해졌다.


그때 이들 부부가 구매한 첫 번째 작품이 운보 김기창 화백의 ‘청록산수’였다. 그림 속에서 유유하게 노를 젓는 뱃사공을 보면서 바로 자기라고 느끼며 바라보는 것만으로 아침 7시면 병원 문을 열고 종일 일하던 스트레스가 풀렸다고 했다. 그렇지만 병원을 경영하는 개업 의사는 진료실을 벗어나기 힘들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을 마치고 쉬는 날이면 부부는 종종 그림을 보러 왔는데 올 때마다 그림을 보는 눈이 놀라웠고 안목이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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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컬렉터가 되면서 박 원장은 미술 이론과 작가론을 의대생처럼 공부하기 시작했고 관련 서적을 통해 그림 보는 안목이 전문가처럼 높아지면서 작품의 컬렉션과 질도 비례해서 늘어났다.

“사실 병원은 어찌 보면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은 곳이에요. 의사라는 직업은 환자를 치료하기에 다소 답답한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생길 때가 있는데 희한하게 그림을 접하면 저 자신의 안정을 찾을 수가 있었어요. 바로 그게 예술의 매력이라 생각했죠.” 박 원장은 그림을 이렇게 비유했다. “거리에 수많은 아름다운 여자가 있더라도 내 곁에 함께하는 한 여자만큼 소중한 것이 없는 법. 그래서 좋다고 생각되던 작품에 소유욕이 생겨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미술품 컬렉터로 제2의 인생 항로를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박 원장이 수집한 아프리카 조각과 컬렉션들


그림 창고는 늘어났고 돈이 모자라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작품을 구입했다. 베르나르 뷔페 같은 작품은 그림 값을 나누어 구입하기도 했다. 당시에 로댕과 더불어 프랑스 근대조각의 거장 브루델이 조각한 ‘영 아담’을 구입한 것도 내가 그와 친하게 지냈던 시절이었다. 수 십여 점의 아프리카 조각 작품도, 70여 점의 북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은 것도 다 이 시기였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 봉사를 가서도 시간이 나면 그림을 찾아 나섰고 베트남의 국민 화가 부이쑤언파이 작품도 그렇게 구입을 했다.

북한화가 정영만의 그림


베트남 국민화가 부이쑤언파이 작품


그는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는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병원 진료하고, 시간이 나면 봉사하고 그림을 사 모으는 취미가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그림을 좋아하는 애호가들도 많이 알게 됐다. 2000년 말에는 마침내 병원 박내과 건물 7층에 ‘Dr.Park 컬렉션’을 만들었다. 이 미술 사랑방에 무려 50여 명의 그림 컬렉터들이 정기적으로 모임과 세미나 등을 열었다. 홀 이름을 부인 이름을 따 운선홀이라 붙였는데 여기에 압구정동·신사동은 물론 멀리 연희동과 성북동·평창동에서 컬렉터들이 모였다.

평생을 종합병원을 짓는 것보다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미술 공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박 원장은 몇 년 전에 모은 재산으로 양평에 닥터 박 갤러리를 열고 부인이 운영하는 문화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3남 1녀를 두고 있는 그의 나이는 80세, 이제 이 그림들이 언젠가 개인 미술관이나 공공 미술관 등 자기 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평생을 의술로 베풀고 그 돈으로 예술가들의 마음과 정신을 사랑한 한 내과 원장의 지독한 그림 사랑, 박호길 원장이 의학계와 미술계에서 존경받는 이유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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