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웠던 도널드 트럼프 시대가 저물고 조 바이든 시대로 바뀌어도 대외 불확실성은 쉽게 걷히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첨단 기술에서 환경·노동 등의 분야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데다 1대1로 압박에 나섰던 트럼프 정부와 달리 바이든 정부는 동맹과 다자주의를 앞세울 것으로 보여 우리로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양자택일 압박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17일 관계부처와 연구기관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바이드노믹스의 다자주의 부활 기조가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지는 않다. 우방국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국제 무역 질서에 돌발 변수를 일으킬 확률은 확실히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유럽 등 아군·적군을 가리지 않고 ‘무역확장법 232조’ 같은 갑작스러운 폭탄을 꺼내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려는 압박에 나섰고 번번이 우리 정부는 대응책 마련에 골몰해야 했다.
미중 갈등 상시화...중국 의존도 높은 한국 고민 커져
그렇지만 ‘미국 우선 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 정책 역시 트럼프 정부와 크게 다르다고 보기 힘들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미국인에게 이익이 되는 노동자 기반의 통상 정책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미국 내 제조’와 ‘미국산 구매’를 강조했다. 대중 무역 적자가 매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어 미 의회 내에서는 중국에 대한 강경 대응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다. 당장은 미중 무역 합의나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25% 관세 철회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나 미중 갈등은 우리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주요 연구 기관과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대중 견제 기조를 계속 유지하면서 미중 간의 갈등이 상시화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미국은 첨단 기술 산업 보호와 환경문제를 들면서 뜻이 맞는 국가들과 함께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미 무역대표부(USTR) 수장에 중국 통인 캐서린 타이가 최근 내정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이 동맹국과 함께 다자 무역 기구 등의 제도로 중국 압박에 나선다면 한국은 이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대외 여건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만 갖고 있다가는 트럼프 임기 내내 미국과 중국이 서로 자기편에 줄을 서라고 압박했던 일들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경제 회복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큰 까닭에 미중 통상 마찰이 한국 수출에 직격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액은 지난해 1,325억 달러로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8%로 가장 높았다.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 미국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명확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나 이 경우 중국의 즉각 반발을 부를 수 있어 정부로서는 고민이 깊다.
새로운 무역모델 출범할까...美와 양자 경제협력 모델도 발굴할 필요
아울러 보호무역주의 기조 속에 새로운 무역 모델 출범 가능성 등의 변수까지 고려하면 통상 환경 방정식은 한층 더 복잡해진다. 바이든 정부의 통상 정책은 다자주의에 입각한 미국의 리더십 회복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기존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참여하기보다는 새로운 체제를 추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개편에 나서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지난해 7월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우리나라나 일본·싱가포르 등의 국가에 참여를 요청하는 식이다. 우리 정부는 중국이 포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참여했고 CPTPP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태여서 미국의 행보를 주시하며 유연한 전략을 마련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통상 측면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중국에 초점을 맞춰 중국을 때리면 우리나라 등 다른 국가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친환경, 첨단 기술 등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과 전략적으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탄소 조정세’ 등의 환경 규제 강화는 우리 수출에 위험 요소로 꼽힌다. 우리가 강점을 가진 자동차, 반도체, 의료 장비 등의 분야에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 참여하거나 협력이 가능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바이든 정부는 오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0)를 목표로 친환경 인프라와 관련한 연구개발(R&D) 등 그린 분야에 5조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또 인공지능(AI), 5세대(5G), 신소재, 보건 제약, 바이오 등의 R&D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기후변화 대응, 보건·방역, 디지털과 그린 뉴딜, 첨단 기술, 다자주의 등 5대 중점 분야를 중심으로 바이든 신정부와의 양자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