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달리던 국내 증시가 급작스럽게 힘을 잃고 있다. 새해 들어 단숨에 3,250선까지 치솟았던 코스피지수는 계속된 약세로 3,000선이 위협받는 수준까지 후퇴했다. ‘유동성 파티’의 막이 내릴 수 있다는 불안, 가파르게 오른 주가에 비해 기업 실적은 예상보다 못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조정장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되자 국내 증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그룹주들이 줄줄이 하락해 지수를 더 끌어내렸다. 전문가들은 단기 과열을 식히기 위한 조정 국면이 올 1·4분기에 이어질 수 있다고 보면서도 추후 코스피가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말부터 일종의 ‘패닉바잉’으로 주식시장에 대거 뛰어들었던 ‘동학 개미’들이 당황한 기색이 적지 않은 가운데 일각에서는 코스피지수가 3,000선 이하로 떨어질 경우 매수로 대응하는 것이 괜찮은 전략이라는 견해가 제기된다.
◇‘동학 개미’ 비상…두 달 반 만에 최대 낙폭=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주 2.1% 하락한 코스피지수는 18일 전 거래일보다 71.97포인트(2.33%) 떨어진 3,013.93으로 거래를 마쳤다. 2%대의 급락을 보인 것은 지난해 10월 30일(-2.56%) 이후 약 두 달 반 만에 최대 낙폭이다. 이날 장중 한때 3,003.89까지 떨어지며 3,000선 붕괴 우려도 커졌다. 이런 하락장은 기관과 외국인이 주도하는 양상이다. 기관은 지난주 코스피 시장에서 8조 6,833억 원을 순매도했다. 이날도 2,743억 원을 팔았다. 8일부터 11일부터 7거래일 연속 매도세다. 외국인도 이날 2,206억 원 팔았다. 반면 개인은 5,165억 원 순매수했다. 최근 6거래일 연속 매수 우위다. 이 기간 10조 3,169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유동성 장세 막 내릴라’ 살얼음판 걷는 증시=시장이 흔들리는 것은 유동성 파티가 막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이 많다. 저금리와 달러 약세 등 유동성의 힘으로 증시를 끌고 갔는데 미국에서 통화정책의 스탠스가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해소되지 않아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4일 연 0.9170%에서 지난주 1.1%까지 상승했다. 달러화도 반등세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4원 50전 오른 달러당 1,103원 90전에 거래를 마쳤다. 특히 그간 한국 증시가 과속 스텝을 밟았던 만큼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진단은 지배적이다. 일정한 비중을 정해두고 자금을 굴리는 기관이 줄곧 한국 주식을 파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 많다. 지난해 11월부터 약 33%가 오르면서 한국 주식의 수익률이 좋았던 만큼 비중 조절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매도에 나섰다는 뜻이다. 기업 이익의 개선이 주춤해진 것도 약세의 원인으로 꼽힌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코스피 영업이익 추정치(약 33조 원)는 전월 대비 1.4% 감소했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에서 금리가 오르면서 자금 흐름이 바뀔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고 실적 모멘텀도 이미 선반영됐다”며 “코스피가 10월 말 대비 30% 넘게 올랐는데 지속 가능한 상승장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급락에 곡소리 나는 ‘삼성 개미’=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가 급락한 것도 시장이 요동친 배경으로 해석된다. 실제 삼성전자는 8만 5,000원으로 거래를 끝내 전 거래일보다 3.41% 하락했다. 장 초반 2%대 약세가 이어졌던 삼성전자 주가는 이 부회장의 구속 소식이 전해진 직후 4.43% 급락하기도 했다. 삼성그룹 지배 구조 개편의 핵심인 삼성물산은 6.84% 하락했으며 삼성SDI와 삼성생명은 각각 4.21%, 4.96% 내렸다. 이에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이날 하루에만 28조 원이 증발하면서 776조 원으로 줄었다. 경영자의 공백으로 기업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주가가 동반 급락세를 보인 것이다. 특히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35% 차지하는 삼성그룹주들이 줄줄이 떨어지자 코스피지수의 낙폭을 더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1분기는 조정장 염두…성급한 대응 자제”=현재 여의도 증권가에서도 조정의 정도를 쉽게 예단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다만 과열된 시장을 식히는 데는 한 달 이상 걸리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지수도 3,000선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관측도 있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월까지는 (지수가 횡보하는) 기간 조정 양태를 보일 것”이라면서도 “다만 미 국채 금리 1.9% 올라가면 변동성이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많이 빠질 경우 고점 대비 10% 정도는 하락할 수 있다”며 “그동안 3개월 정도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1개월~1개월 반 정도 기간 조정의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현 조정장에서 너무 성급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상승장 자체가 끝났다고 판단하는 것도 이르다는 지적이다. 이에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되 반등 국면을 조금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최 센터장은 “조정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들 급하다는 느낌이 있다”며 “조정이 짧을 수도 있는데 3,000선을 기준으로 분할 매수 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오태동 센터장도 “현재 대형 우량주는 조정 시 매수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전했다. 오현석 센터장은 “매수 여력을 위해 일부 현금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완기·신한나·박성호기자 kinge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