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노천시장


이면우


나무 되고 싶은 날은

저녁 숲처럼 술렁이는 노천시장 간다

거기 나무 되어 서성대는 이들 많다

팔 길게 가지 뻗어 좌판 할머니 귤 탑 쓰러뜨리고

젊은 아저씨 얼음 풀린 동태도 꿰어 올리는

노천시장에선 구겨진 천원권도 한몫이다 그리고



사람이 내민 손 다른 사람이 잡아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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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라, 말아라, 에이 덤이다

생을 서로 팽팽히 당겨주는 일은, 저녁 숲

바람에 언뜻 포개지는 나무 그림자 닮았다

새들이 입에서 튀어나와 지저귀고 포르르릉 날다가

장바구니에, 검정 비닐봉지에 깃들면

가지 끝에 매달고 총총 돌아오는 길

사람의 그림자, 나무처럼 길다





공든 탑 쓰러트릴수록 즐거운 곳이 있구나. 귤 탑뿐이랴, 사과 탑, 배 탑, 딸기 탑……. 노점의 호떡 탑, 핫도그 탑, 샌드위치 탑도 호시탐탐 쓰러트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구나. 손님이 쓰러트릴수록 주인도 기뻐하며 제가 쌓은 탑을 헐어 덤으로 얹어준다. 건어물 상회 멸치 탑, 새우 탑, 꼴뚜기 탑도 됫박째 쓰러질 때를 기다리고 있다. 노천시장에 가서 걸어 다니는 나무가 되고 싶다. 장바구니 걸고 공든 탑 허물러 가고 싶다. 천원권이 한 몫 하던 시절은 지났지만, 생을 팽팽히 당겨주는 저녁 숲이 되고 싶다. 사람들이 갇혀 있는 집집마다 배달통에 든 새가 애처롭게 울고 있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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