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들이 가끔 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바로 본인이 지어놓은 건물이 최종 완성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지어진 건물에 사람이 들어오고 가구가 들어오면서 채워진 풍경이 바로 최종 완성물입니다.”
클리오 사옥을 설계한 건축사사무소 OCA의 임재용(사진) 대표는 건축은 ‘빈 그릇'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건축가가 그릇, 즉 건물을 만들면 그릇을 채우는 일은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임 대표의 건축에는 ‘여백’이 있다. 서울시건축상과 건축문화대상 등 각종 건축상을 수상한 클리오 사옥도 마찬가지다.
이 건물의 안팎에는 여백에 대한 임 대표의 철학이 녹아 있다. 화장하기 전의 ‘흰 바탕’을 상징하는 새하얀 외관을 거쳐 내부로 들어서면 외관과 마찬가지로 희고 시원하게 트인 공간이 맞이한다. 높은 층고와 천장의 루버(louver)로 개방감을 넓힌 클리오 사옥의 내부는 마치 흰 도화지 같다.
실제로 클리오 사옥 내 로비·복도·사무실 등의 공간에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됐고 어떤 곳에는 만화도 그려져 있다고 한다. 내부 공간을 도화지 삼아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공간을 꾸미고 있는 셈이다. 그는 “사람과 가구가 들어왔을 때 최종적인 풍경이 완성된다고 보고 공간을 비워놓으려고 한다. 그래야 나중에 공간이 채워졌을 때도 여유가 있다”며 “어떤 가구가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바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임 대표의 철학은 단일 건축물이 아닌 도시에도 적용된다.
도시를 계획할 때도 건물과 인프라를 꽉꽉 채워넣기보다는 시민들이 채울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총감독을 역임한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주제인 ‘집합 도시(collective city)’와도 일맥상통한다. ‘집합 도시'라는 관점에서의 ‘도시’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사회적 환경의 상호작용의 집합체다. 시민이 주어진 도시환경에 맞춰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도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임 대표는 “도시는 시민들이 만들어나가야 하는 공간인데 이를 톱다운 방식으로 과하게 채워넣으면 시민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시민들도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그런 도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y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