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강원도 통천 출생인 고(故)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창업주로는 드물게 60여년을 경영 일선에 몸담았다. 맏형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해외 유학을 권했지만 정상영 명예회장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건축자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형과는 다른 독자 노선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지난 1958년 20대 약관의 나이에 직원 7명, 생산 설비 1대로 금강스레트공업(KCC의 전신)을 창업했다. 안으로 튼튼한 회사로 키우고 밖으로는 산업 보국을 실천한다는 창업 정신은 자산 규모 11조 원(2019년 기준), 재계 32위라는 KCC그룹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1974년에는 ‘고려화학’을 세워 유기화학 분야인 도료 사업에 진출했고 1989년에는 건설 사업 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건설)을 설립했다. 2000년에는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으로 새롭게 출범한 후 2005년 금강고려화학㈜을 ㈜KCC로 사명을 변경해 건자재에서 실리콘, 첨단 소재에 이르는 글로벌 첨단 소재 화학 기업으로 키워냈다.
재계에서는 정상영 명예회장을 한국 경제의 성장과 그 궤를 같이해온 현장 중시 경영자로 평가한다. 지난해 말까지 매일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봤을 정도로 창립 이후 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는 게 KCC의 설명이다.
특히 정상영 명예회장은 외국에 의존하던 도료·유리·실리콘 등을 자체 개발해 엄청난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둬 기술 국산화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1987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 봉지재(EMC) 양산화에 성공하는 등 반도체 재료 국산화에 힘을 보탰고 1996년에는 수용성 자동차 도료에 대한 독자 기술을 확보해 도료 기술 발전에도 큰 획을 그었다. 2003년부터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실리콘 원료(모노머)를 국내 최초로 독자 생산하게 된 것도 그의 공으로 꼽힌다.
농구 명문 서울 용산고를 졸업한 고인은 농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인재 육성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KCC의 한 관계자는 “고인은 동국대·울산대 등에 사재 수 백억 원을 기꺼이 쾌척하는 등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
장례는 소탈하고 검소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최대한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다. 31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 정몽규 HDC그룹 회장,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대표 등이 정상영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발인은 3일 오전이다.
/이상훈 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