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광덕 칼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정권의 ‘신기록’ 금메달

文대통령 취임사 정반대로 실현돼

25번 집값대책, 판사 첫 탄핵 통과

3% 룰, 공수처도 해외 사례 없어

巨與폭주로 위기, 민심이 브레이크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한 약속이다. 3년 9개월이 흐른 요즘 “그나마 가장 잘 지켜진 게 이 공약”이라는 ‘웃픈’ 얘기도 나온다. 자고 일어나면 과거에 겪지 못했던 깜짝 소식들이 쏟아지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다짐은 정반대 방향으로 실현되고 있다.

4일에도 유례없는 뉴스들이 넘쳐났다. 문재인 정부는 25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부동산 정책 발표 건수로 보면 역대 정권 중 금메달감이다. 대책의 골자는 공공 개발 위주로 서울 32만 호 등 전국적으로 83만 6,000호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이 아닌 공공에 집착하는 ‘관제 뉴타운’ 식 발상으로는 반쪽 공급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했다. 지난해 집값이 14년 만에, 전셋값이 9년 만에 최고 폭등하면서 대통령의 말은 신뢰를 잃었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다가 지난해 고용 성적표가 외환 위기 이후 최악을 기록한 것과 유사하다.

범여권 의원들은 이날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헌정 사상 일선 판사를 대상으로 한 첫 탄핵 추진이다. 판사에게 잘못이 있다면 사법부 내부 징계나 재판 등 제재 수단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판사에 대해 굳이 탄핵으로 옭아매는 것은 ‘법원 길들이기’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그는 임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데 대해 탄핵 논란 때문이 아니었다고 말했으나 녹취록 공개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날까지 공수처 검사를 뽑기 위해 원서를 접수한 것도 처음 벌어진 일이다.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 홍콩의 ‘염정공서’처럼 공직자 비리 수사 기구를 둔 나라들은 일부 있다. 그러나 그곳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준 경우는 없다. 특히 검경이 수사 중인 사건을 공수처로 넘기도록 강제하는 수사이첩요청권까지 공수처장에게 부여한 것은 어디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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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여당이 지난해 말 통과시킨 ‘기업 규제 3법’에는 해외에 없는 족쇄들이 적지 않다. 상법에서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들이 기업 사냥꾼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가령 해외 투기 자본이나 중국의 경쟁사 측이 입맛에 맞는 감사를 세워 삼성·현대차·SK 등 우리 기업들의 기밀 빼가기를 시도하면 정상 경영이 어렵다. 일부 시민 단체는 유사한 규제가 이스라엘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엄밀히 비교하면 우리와 다르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대주주 의결권을 묶어놓는 곳이 없다.

모회사의 주식을 0.5%(상장회사) 이상 갖고 있는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제도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 전쟁에 나선 우리 기업들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꼴이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 징계 시도도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 밖에도 국가 부채 급증, 보유세 등 세금 인상, 건강보험·고용보험료율 인상, 출생아 급감, 한일 관계 최악, 주요 광역단체장의 연쇄 성추행 파문 등 ‘배드 뉴스’들이 이어졌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소식들이 쏟아지는 데는 빛과 그림자 양 측면이 있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 등 헌법 가치를 어기면서 무리수를 남발했다는 점이다. 다수의 힘으로 폭주하면서 부끄러운 ‘한국 신기록’과 ‘세계 신기록’들을 쏟아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민주주의 후퇴와 국론 분열, 상식 붕괴 위기를 맞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여당의 포퓰리즘 정책에 난색을 표시하면서 “그침을 알아 그칠 곳에 그친다는 ‘지지지지(知止止止)’ 심정으로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현 정권이 스스로 멈추기를 거부한다면 깨어 있는 민심이 브레이크를 거는 수밖에 없다.

/김광덕 논설실장 kdkim@sedaily.com


김광덕 논설실장 kd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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