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재산 기부 선언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유는 무려 5조 원이 넘는 기부 규모와 50대 중반의 나이로서 한창 활동하고 있는 기업인이라는 점이다. 은퇴 무렵에 과학기술 발전이나 인재 육성을 위해 수백억 원을 학교나 자선단체에 주로 기부하는 기존 형태와는 규모와 접근 방법에서 다르다.
자본주의에서 기부 문화는 기업 발전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민간에 자산이 축적되고 이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기부 문화다. 건강한 자본주의는 활발하고 자발적인 기부 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한국 경제에서 대규모 민간 자산의 축적은 지난 1970~1980년대의 산업화 과정에서 먼저 이뤄졌다. 대부분 1910년도에서 1920년도 사이에 출생한 기업인들이 오늘날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대기업 집단을 일군 것이다. 이들은 국가 경제의 급속 성장에 기여한 일등 공신이 됐지만 건전한 기부 문화를 정착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공과를 동시에 갖는다. 특히 건강한 기업 생태계 구축에 앞장서기보다는 경영의 대물림 같은 친족 경영에 더 집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사에서 이러한 아쉬운 평가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2000년대에 찾아왔다. 그것은 정보기술(IT)·인터넷과 관련된 신산업에서 대규모 민간 자산이 축적된 것이다. 그 주역은 1966년생인 김 의장을 비롯해 대부분 1967년과 1968년생 기업인들이다. 이들은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게임·IT 등에서 국내외 시장을 무대로 눈부신 성공을 거두며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자산을 축적했다. 이들은 앞 세대와는 다른 철학을 갖고 다른 사업을 전개해왔으며 한창 물오른 사업 역량과 통찰력으로 경영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기업 생태계와 사회를 위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김 의장의 기부 선언은 자연스럽고도 현명한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의 기부 선언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통해 거둔 열매를 사회에 되돌림으로써 ‘더 나은’ 질서를 창출하고 후손에게 더 강건한 생태계를 물려줄 수 있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의 ‘자연스러운’ 선순환 흐름은 이미 2010년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에 의해 시작된 ‘더기빙플레지’라는 기부 클럽이 전 세계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현재 200여 명의 전 세계 부호들이 재산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기부함으로써 인류에 기여하겠다는 선언을 한 바 있다.
또 그의 선언이 현명한 이유는 기업 조직을 활용해 기부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어려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기부를 금액으로만 하지 않고 갖고 있는 아이디어와 경험 그리고 조직 역량을 활용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때 기부금은 혁신적 아이디어와 실천력이 내재된 소위 스마트 머니가 된다.
선진 자본주의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세계 최대 자본주의를 이룬 미국 경제의 발전에는 철강왕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 철도왕 밴더빌트 등이 실천한 기부 문화가 밑거름이 됐다. 그들이 처음부터 기부 천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에는 예외 없이 정치 결탁, 기술 탈취, 노조 파괴, 복잡한 사생활로 지탄의 대상이었다. 미국의 선진 자본주의는 그들이 탐욕을 자제하고 자선과 기부로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 의장의 기부 선언은 한국 자본주의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여론독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