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공감] ‘갱상도’에서 온 ‘애린 왕자’






“아제도 다 엉망진창이고, 다 뒤죽박죽이네.” 가 진짜 화 났더래이. 금색 머리카락 막 날리믄서. “내가 아는 별에 얼굴 벌건 으른이 사는데, 꽃 향기 맡은 적도 없고, 누구 하나 사랑해본 적도 없고, 덧셈만 하믄서 살데, 그라믄서 하루 죙일 아제 같이 주끼더라고. ‘나는 중요한 일 하는 사람이데이! 나는 중요한 일 하는 사람이데이!’ 그라고 으스댄다 아인교, 근데 사람이 아니라꼬. 그건 버섯이라꼬!” “뭐라꼬?” “버섯이라꼬!”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최현애 옮김, ‘애린 왕자’, 2021년 이팝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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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품귀 현상까지 빚은 희한한 베스트셀러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아닌 ‘갱상도’판 ‘애린 왕자’다. 전 세계의 언어들을 수집해 고전을 번역하는 독일 틴텐파스 출판사의 프로젝트로 ‘어린 왕자’를 경상도 사투리로 옮긴 포항 출신의 최현애 번역가는 경상도 말씨의 매력을 십분 살려 낯설고도 신선한 ‘애린 왕자’ 판본을 만들어냈다.

유럽의 한국 교민 사이에서 먼저 인기를 끈 ‘갱상도’ 출신의 ‘애린 왕자’는 웃으려고 이 책을 사들인 이의 마음을 문득 ‘애리게’ 한다. 소혹성 B612호를 떠나 다른 별로 여행을 떠난 ‘애린 왕자’는 온갖 유형의 완고하고 불쌍한 ‘으른들’을 만난다. 명령하고 짜증 내고 후회하고 허영을 부리고 ‘한가롭게 걸어 다닐 시간도 엄써서’ 운동 부족이라고 자랑하듯 투덜대는, 어디선가 본 듯한, 지금도 우리 주변에 살아가고 있는 마음 짠한 어른들. ‘갱상도’의 ‘애린 왕자’는 ‘나는 중요한 일 하는 사람이데이!’ 하고 으스대는 어른을 갸우뚱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참말로 으른들은 학실히 이상하다카이’ 하고 되뇐다. 소혹성 B612호와 주변의 별들은 유럽 하늘이나 과거의 저 먼 하늘만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마을 바로 근처에 있었다. 팔도에서 살아낸다고 매일 ‘욕보는 얼라’들에게 ‘애린 왕자’를 보낸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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