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인구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에는 정년이 연장되거나 폐지될 것입니다. 일을 더 오래 하도록 하는 제도가 청년 세대의 취업 기회를 막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임금과 생산성이 합치되는 보상 체계가 필요합니다.”
박우람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7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KDI가 본 한국 경제 미래 과제’를 주제로 열린 개원 5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의 발표자로 나서 이같이 말했다. 박 연구위원이 본 우리나라 근로 체제의 첫 번째 문제는 낮은 생산성이다. 우리나라 취업자 1인당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대비 260시간이나 많다. 반면 우리나라의 달러 기준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9.6달러로 OECD 평균(53.4달러), 미국(70.8달러), 독일(66.4달러), 일본(45.9달러)과 비교해 낮았다.
직무보다 연령과 근속연수의 영향을 받는 호봉제도 주된 문제로 꼽혔다.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은 직무보다는 연령과 근속연수의 영향을 받는 호봉제를 시행하고 있다. 박 연구위원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 중 호봉급을 채택한 곳은 63.4%였고 직무급을 도입한 곳은 18.5%, 직능급을 적용한 곳은 16.4%에 불과했다.
이러한 호봉제는 기술 진보와 인구구조 변화에 부적합하다는 것이 박 연구위원의 시각이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직무가 늘어나고 인구 고령화에 따라 정년 연장 등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생산성은 근속이 쌓이며 높아지다가 어느 정도 연령 이상이 되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연공서열 임금체계는 그러한 생산성을 반영하지 않고 근속연수가 긴 이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급한다.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생산성에 비해 고임금을 받는 인구 비중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직적 임금구조가 생산성을 낮추고 청년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박 연구위원은 “고임금을 받는 근로자에 대한 부담으로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호봉제하에서 근로자는 변화하는 기술에 대응해 직무 능력을 계발할 유인을 찾기 어렵고 이에 따라 급변하는 사회에도 적응할 수 없게 된다”고 전망했다.
콘퍼런스에 토론자로 나선 김지운 홍익대 교수는 직무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이 정년제도 자체의 필요성을 낮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노동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는 경제성장기에 근로자의 이직을 낮추고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임금체계”라며 “정년제도는 이러한 임금체계하에서 임금이 노동생산성을 초과하지 않도록 퇴직시키는 제도인 만큼 직무급 체제에서는 정년제도의 필요성도 낮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직무급 중심의 임금체계에서는 직무 가치를 임금에 즉각 반영해 연령에 따라 임금과 생산성 차이가 크게 발생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직무급 임금체계로의 전환은 현재 논의되는 정년 연장 및 폐지에 선행돼야 하는 정책 목표”라고 강조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러한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정부가 직무 및 직급별 임금 정보를 수집하고 공개해 민간이 이를 토대로 인사관리를 개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공공 부문에서 선도적으로 일하는 문화와 임금체계 개편을 실시해 민간 노력에 마중물 역할을 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주 52시간근로제 시행과 같은 정책에 대해서는 “순기능도 있겠지만 급격하게 시행될 경우 현장에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로미나 보아리니 OECD WISE센터 소장은 특별 세션에서 “한국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임금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며 “한국 노동시장이 포용적으로 변하기 위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아리니 소장은 “비정규직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한 고용 형태 계약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 설계도 필요하다”면서 “포용적 노동시장을 평가하기 위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