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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낯선 땅…불안을 걷어내고 희망을 뿌리내리다

■ 미나리 3월 3일 개봉

아메리칸 드림을 꿈 꿨던

세상 모든 이들의 이야기

도전과 좌절, 역경·고난 등

'가족의 힘'으로 이겨 나가

윤여정 '여우조연상 22관왕'

영화 미나리 스틸컷./판씨네마영화 미나리 스틸컷./판씨네마




15세기 유럽인들이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미국 땅으로 향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종교적 자유를 얻기 위해 떠난 이도 있었고, 굶어 죽으나 바다를 건너다 죽으나 매한가지란 심정으로 신대륙 이주를 택한 이도 있었다. 노예 무역의 희생양이 돼 처참하게 끌려 다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도 있었다. 가난, 박해, 납치, 죽음의 위기 끝에 다다른 곳. 그래도 그 땅에서 절망 대신 희망을 캐내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고, 그들의 바람은 어느 순간부터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한국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꿈을 꿀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작 된 한인의 미국 이민은 전쟁을 거치며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사이 절정에 달했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보란 듯이 성공하고 말겠다는 각오로 미국행을 택한 어느 가족의 이야기, 영화 ‘미나리’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판씨네마영화 미나리 스틸컷./판씨네마


영화 속 병아리 감별사 부부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는 한국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 첫 발을 디뎠다. 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아들 데이빗(앨런 김)도 낳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번듯하게 자리 잡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들이 미국에서 재도전을 위해 떠난 곳은 아칸소의 외딴 지역. 한인 동포는커녕 인적마저 드문 곳에 덩그러니 놓인 ‘바퀴 달린 집’, 즉 이동식 주택을 새 보금자리라고 소개하는 제이콥의 손짓에 모니카는 당혹감과 배신감이 뒤섞인 눈빛을 보낸다.

제이콥의 꿈은 딱 하나다. 비옥한 땅에서 생명력 가득한 채소를 한가득 길러내는, 근사한 농장주로서 아버지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 하지만 채소가 땅 속으로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싱싱하게 자라는 과정을 보기란 쉽지 않다. 미국이라는 땅은 늘 그러했다. 푸른 하늘 아래 드넓게 펼쳐진 대지를 보여주며 갓 도착한 이들에게 희망을 한껏 품게 했지만 성공의 열매는 선뜻 내주지 않았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판씨네마영화 미나리 스틸컷./판씨네마



제이콥과 모니카의 삶은 점점 고달파진다. 부부가 함께 농장과 병아리 감별사 일을 병행하느라 아이들을 돌보기 힘들어지자 결국 한국에서 모니카의 엄마이자 아이들의 할머니 순자(윤여정)가 미국으로 건너와 가족의 일원이 된다. 할머니가 합류하면서 다섯이 된 가족. 한국인 할머니와 미국 이민 1세대 부부, 2세대 아이들은 가족인 동시에 한 팀이 되어 살아간다. 이들은 매일 밤 각자 불안 속에서 힘들었던 오늘이 가고 나면 행복한 내일이 찾아 오길 간절히 바라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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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영화다. 어린 시절 정 감독의 아버지가 제이콥처럼 가족을 모두 데리고 아칸소로 갔다고 한다. 정 감독은 어린 시절, 아칸소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기억을 영화에 섬세하게 새겨 넣었다. 정 감독은 “아버지는 ‘거대한 서부’나 ‘자이언트’ 같은 영화에서 본 낭만적인 꿈을 믿고 미국에 왔다. 비옥한 땅이 많은 것을 내어줄 것이라는 꿈이었다. 그러나 땅은 너그럽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 감독의 말처럼 땅은 너그럽지 않지만 끝까지 매정하지는 않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반복하는, 질긴 생명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결국 뿌리를 내릴 공간을 내어준다. 할머니 순자가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이 ‘원더풀(wonderful)’하게 번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판씨네마영화 미나리 스틸컷./판씨네마


영화는 지난해 세상에 첫 공개된 이후 전 세계 각종 영화제에서 68관왕 153개 노미네이트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배우 윤여정이 미국에서만 여우조연상 22개를 받았다. 다만 이달 초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가 제78회 골든글로브상에서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리면서 논란이 됐다. 누가 봐도 ‘미국 영화’인데 ‘외국어 영화’로 분류했다는 점에서다.

한국어가 많이 사용되긴 하지만 미나리는 결코 한국인 이야기만 담은 영화가 아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향했던 수많은 이민자의 사연을 품은 영화다. 아니, 더 나아가 미국이든 아니든, 더 나은 삶을 위해 낯선 곳에서 뿌리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세상 모든 이에게 헌정하는 영화다. 러닝 타임 115분, 12세 이상 관람가, 3월 3일 개봉.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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