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롭게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세계도자실 전시가 화제다. 그중에서도 독일 17세기 궁전에서 방 안 전체가 중국 청화백자로 장식된 모습을 재현한 공간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당시 유럽에서 중국산 청화백자가 얼마나 인기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만 사실 중국 도자기 열풍은 그 전부터였다. 당나라 때 만들어진 중국 도자기는 고려를 비롯해 일본·동남아시아·인도·이란·이라크·이집트 등 세계 각지로 수출됐다.
고려 때는 무역이나 사신의 왕래를 통해 중국에서 도자기를 들여왔다. 실제로 궁궐·관청·사찰·무덤 등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청자, 백자, 흑유자(검은빛의 자기) 등 오대부터 송·원대까지의 다양한 중국 도자기가 발견되고 있다.
중국 도자기는 특권층의 실생활에서 사용되기도 했지만 재력이나 신분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그중 중국 징더전(景德鎭) 가마에서 만들어진 푸른빛을 띠는 순백의 청백자(靑白瓷)는 송나라 황실과 귀족 계층에서 쓰일 만큼 명품 중에 명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도자기의 본고장 중국에서도 ‘천하제일 고려비색’이라 불릴 만큼 수준 높은 청자를 제작한 고려인이었지만, 그런 자부심과는 별개로 이미 명품으로 인식된 ‘중국 도자기’를 갖고자 하는 열망은 지금의 해외 명품 인기처럼 자연스러운 심리였을지도 모른다.
당시 송·원대 중국 도자기가 고려청자의 형태나 문양·기법 등에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17세기 유럽에서는 중국 도자기를 모방해 도기를 만들었고, 18세기 독일에서는 유럽 최초로 자기 제작이 성공했다. 갖고자 하는 열망은 모방으로 이어지고, 모방은 새로운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역시나 ‘모방은 창조의 아버지’였다. /이명옥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 학예연구사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