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에 울어봤자 소용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슬퍼해도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요. 가장 좋은 건 그냥 계속 걷는 겁니다.” (조지프 마코비치, 마틴 어스본 ‘나는 이스트런던에서 86 1/2년을 살았다’, 2017년 클 펴냄)
공모전에 낼 사진 모델을 궁리하던 사진작가가 스튜디오에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그때 창밖으로 약간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젊은이들이 재잘거리는 거리에서 그는 마치 외계인처럼 보였다. 벗어진 머리에는 얼마 남지 않은 백발이 흔들리고 있었고, 손에는 비닐봉지를 덜렁덜렁 든 채 그는 광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길 잃은 노인이거나 홈리스이거나, 비닐봉지에 술병을 가득 담은 알코올 중독자로 보이는 노인, 그러나 그에겐 뭔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사진작가는 카메라를 챙겨 들고, 그를 쫓아 나섰다. 할일 없이 광장을 얼쩡거리는 그 괴상한 노인은 그러나 사진작가보다, “우리 모두보다 더 멀쩡했다”.
80여 년 동안 런던에 살면서 노인은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슬픔과 절망에 발이 묶이지 않았다. ‘울어봤자 소용 없다, 아무리 슬퍼해도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다’는 노인의 말에는, 역설적으로 그가 무수한 일에 혼자 눈물 흘리며 사람들에게 간절히 이해받고 싶어했던 시간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울고 세상을 원망하고 억울해하는 대신 비닐봉지에 꼭 필요한 것들만 단출하게 담아 다니며, 계속 살아갔다. 사진작가 마틴 어스본은 이 현명한 노인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그의 말을 받아 적었다. 그는 조지프에게서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프는 타인에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슬프다, 내 슬픔을 알아달라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타인의 슬픔과 삶은 있는 그대로 보려 애썼다. 86년 동안 이어진 평범하고 소박하고 정직한 삶은 그렇게 사진과 글귀로 남아 영원히 책에 보관됐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여론독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