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햄릿’, 괴테의 ‘파우스트’는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작품이다. 타이틀 롤인 햄릿과 파우스트가 뿜어내는 변화무쌍한 감정과 고뇌를 표현해 내려면 탄탄한 내공 그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배우에겐 엄청난 부담이지만, 그 무게는 ‘연기력’이라는 왕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물론 그 왕관도 부담도, 어디까지나 남자 배우의 몫이었지만 말이다. 제 아무리 ‘천의 얼굴’이라 칭송 받는 명배우라 해도 여성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방황하는 햄릿 왕자와의 엇갈린 운명 속에 안쓰럽게 죽어간 연인 오필리어, 고뇌하는 파우스트 박사가 망가뜨리는 젊은 여인 그레첸이었다.
국립극단이 이 캐릭터를 과감히 깨뜨리고 나섰다. 햄릿은 덴마크의 해군 장교 공주가 됐고, 파우스트는 고령의 여성학자로 거듭나 그레첸과 연민과 공감으로 연결되는 존재로 변신했다. 새롭게 선보이는 햄릿과 파우스트가 전하는 메시지는 같다. 이것은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무대 위 군복 차림의 한 젊은이가 소리친다. “약한 자여 내 이름은 무엇인가. 이 왕국은 정말 최악이다.” 병나발을 불며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이 인물은 숙부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꿈꾸는 덴마크의 공주 햄릿(이봉련)이다. 부새롬이 연출하고 정진새가 각색한 ‘햄릿’은 햄릿을 왕위 계승자이자 칼싸움에 능한 해군 장교 출신의 여성으로 그린다. 연인 오필리어는 당당하게 할 말 하는 청년으로 재탄생했다. 캐릭터의 성별을 바꿨다고 원작이 여성 서사로 변형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은 선악과 정의를 두고 갈등하는 인간에 초점을 맞췄다. 부 연출과 정 작가는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햄릿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게끔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부 연출은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성적으로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해서 괴로워하고, 부딪히는 얘기들을 이 작품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왜 여성은 맨날 그런 것을 고민해야 하느냐”며 “햄릿이 여성이어도 남성과 다를 바 없이 왕권과 복수를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을 기존 작품과 다르게 만든 것은 ‘젠더 프리 캐스팅’보다는 오히려 현실감을 반영한 재기발랄한 연출에 있다. 서양 고전 연극의 말투와 어조를 현대의 구어체로 바꿔 이야기를 한결 친숙하고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주요 인물의 행동에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특히 숙부 클로디어스가 왜 형을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독백하면서 햄릿의 명대사인 ‘죽느냐 사느냐’를 읊는 장면에서 관객은 클로디어스를 ‘햄릿과 같은 고민으로 괴로웠던 존재’로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텅 빈 무대와 그 위에 흩뿌리는 흙, 바람, 비는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일깨우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김성녀가 주연을 맡은 ‘파우스트 엔딩’은 과감한 시도가 돋보인다. 조광화 연출이 괴테의 ‘파우스트’를 재창작한 이 작품은 ‘인간의 한계에 절망한 노 박사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의 영혼을 건 계약’이라는 큰 뼈대는 유지하지만, 원작과 달리 신을 우스꽝스럽고 무능한 존재로 그렸으며 파우스트의 엔딩(결말) 역시 구원 아닌 지옥으로 바꿔 놓았다.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조광화 연출(작·연출)은 ‘다른 이야기’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여자 파우스트를 생각하게 됐다. 그는 지난 28일 공연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전과 같은 방식의 캐스팅으로는 원작의 무게감에서 못 벗어날 것 같았다”며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니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주목한 것은 여성 파우스트와 그레첸과의 관계 설정이다. 원작에서 파우스트는 젊음을 되찾은 뒤 그레첸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늙은 남성이 마법의 힘으로 회춘해 젊은 여성과 연애하고, 결국 그녀를 망가뜨리는 이야기는 오늘날의 젠더 감수성과도 거리가 멀다. 여성 파우스트와 젊은 남성 그레첸이라는 설정이라고 그 거부감이 상쇄되지도 않는다. 이에 조 연출은 그레첸을 여성으로 남겨두되 사랑의 개념을 인간 대 인간의 공감, 연민, 연대로 확장했다. 조 연출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오해도 많고, 그래서 순수하게 사랑 이야기를 만드는 게 힘들다”며 “이 시대에 가치와 윤리, 계급을 벗어난 사랑은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작품 속 파우스트와 그레첸의 사랑을 설명했다. 극 중 혼인 신고를 한 두 사람에게 쏟아지는 ‘여자가 여자랑 결혼한대’라는 비아냥에는 한정된 사랑의 의미로 세상을 재단하는 이들을 향한 일침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두 작품 모두 색 다른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주인공의 성별은 무대에서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중에 이 작품(각색본)을 누군가 다시 공연할 때 햄릿을 남자가 하든 여자가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해요.”(부새롬) “남녀 아닌 인간으로 가자고 맘먹으니 그제야 작품이 보였어요. 인간의 한 모습으로 보면 굳이 파우스트가 남자냐 여자냐를 가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김성녀) 성별을 넘어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너와 나의 모습을 풀어내는 것, 국립극단의 두 작품이 보여준 가능성과 의미는 여기 담겨 있다. ‘햄릿’은 지난달 25~27일 온라인 극장을 통해 공연을 선보였고, ‘파우스트 엔딩’은 이달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