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자국 공장에서 생산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호주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 수출이 막힌 백신이 유럽연합(EU) 역내에 재배분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백신 이기주의’가 본색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탈리아 아나니 공장에서 생산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5만 회분의 호주 수출이 막혔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언론 라 레푸블리카에 따르면 이탈리아 당국은 지난달 26일 이러한 결정을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에 알렸고, EU 집행위도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 수출이 불허된 백신은 EU 역내에 재배분될 전망이다.
EU에서 코로나19 백신의 수출이 막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U는 올 1월 말부터 제약사가 EU 내에서 생산된 코로나19 백신을 역외로 수출할 때 승인을 받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공장의 생산 공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EU로의 백신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전해진 뒤 나온 조치였다. 다만 EU는 캐나다와 일본, 영국, 호주 등으로 가는 총 27개의 백신 수출 건을 모두 승인해왔다.
EU의 이번 조처로 세계보건기구(WHO)와 UN 등이 우려하는 ‘백신 이기주의’가 현실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말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부유한 국가들의 선점으로 백신 물량이 부족하게 됐다며 선진국들에 돈이 아닌 백신 기부를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측은 지난 1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의 백신 공유 요청을 거부하며 자국민의 백신 접종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코로나19 유행이 여전하고 백신 접종 속도는 더딘 상태에서 ‘자국민 우선’ 원칙을 내세우는 국가들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는 여론도 있다. 다만 미국과 EU 등이 ‘백신 리더십’을 잃어가는 상황을 틈타 중국은 적극적인 백신 공급을 통해 아프리카와 인도양 등에서 패권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은 60개 이상 국가에 백신을 공급하기로 했고, 이미 20개국 이상에서 중국 백신이 사용되고 있다. 서방 제약사의 백신을 거의 받지 못한 짐바브웨, 우간다, 시에라리온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중국은 아프리카 내 백신 유통을 위한 공급망을 구축하며 지속적인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