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학교폭력 예방교육 때 너무 긴장됐어요. 강의 같은 걸 해본 적 없으니까요. 시간을 좀 때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기타를 들고 갔죠. 그런데 웬걸, 반응이 너무 좋은 겁니다. 교육 끝날 때까지 집중하는 눈빛이 느껴졌어요.”
기타를 메고 학교를 누빈 학교전담경찰관(SPO)이 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 충정로지구대 송준한(54) 경감의 이야기다. 송 경감은 기타 연주는 물론 직접 작사·작곡한 곡을 담은 앨범까지 발매한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마포경찰서 SPO로 근무하면서 음악을 매개로 학생들과 소통했다. 충정로지구대에서 만난 송 경감은 첫 예방교육을 나갔을 때를 회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SPO는 학교폭력을 예방·관리하고 일탈 청소년을 선도하는 경찰관이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과 세대의 벽을 허물고 마음을 터놓는 관계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거듭하던 송 경감에게 떠오른 것은 결국 그가 잘하고 좋아하는 음악이었다. 송 경감은 “무작정 훈계하려 들기보다는 음악과 같은 매개체를 통해 학생들과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송 경감은 학생들에게 ‘테리우스’로 통한다. 음악을 하던 20대 시절 머리를 길게 길렀던 모습에서 따온 별명이다. 그는 “교육을 시작할 때 딱딱한 ‘경감님’ 대신 별명으로 부르게 한다”면서 그렇게 하면 학생들이 SPO들을 보다 편하게 대하고 금방 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첫 교육에 자신감을 얻은 송 경감은 SPO 활동에 본격적으로 음악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경찰의 청소년 문화활동 지원프로그램인 ‘나침반캠프’가 대표적이다. 송 경감은 10여명의 학생들에게 기타를 가르쳤고 관내 실용음악학원과도 손잡고 보컬, 드럼 등 다양한 분야로 캠프를 넓혀갔다. 학생들과 함께 ‘학교폭력 예방’을 주제로 홍대에서 버스킹도 했고, 서울경찰청 행사에서는 ‘서른즈음에’를 연주해 표창도 받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을 묻는 질문에 송 경감은 ‘졸업시키느라 무척 고생한 친구가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학교폭력 피해를 입고 타지에서 전학 온 학생이었는데 처음에는 며칠간의 상담에도 대화를 거부했다. 그랬던 학생의 말문을 트이게 한 것 역시 음악이었다. 송 경감이 먼저 자신이 걸어온 ‘음악사’를 들려주자 보컬에 관심이 있던 학생은 마음을 열었다. 그 길로 학생의 손을 잡고 실용음악학원에 등록시켰다. 송 경감은 “취미활동하면서 학원에서 친구도 사귀니 불과 몇 개월 만에 180도 바뀌더라”며 스승의 날에 꽃다발을 들고 경찰서를 찾아온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송 경감은 애초 경찰이 될 생각이 없었다. 중학생 때부터 기타를 잡았던 그의 목표는 줄곧 음악인이었다. 그는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가 운영하고 인순이, 나훈아 등 당대 가수들이 공연하던 무대인 ‘홀리데이 인 서울’ 하우스 밴드에서 20대를 보냈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불안정적인 직업과 수입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고 결국 재수 끝에 경찰의 길로 들어섰다. 음악적 재능을 살려 경찰악대에 지원했으나 연이 닿지 않았던 송 경감은 SPO 업무에서 음악을 통해 학생들과 만난 것이다.
6년간의 SPO 업무를 뒤로 하고 지금은 지구대 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현재 ‘꿀밤나무’라는 어쿠스틱 밴드에서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손수 작사·작곡해 앨범도 냈다. 공연할 때면 학생들과 버스킹하던 때가 생각난다는 송 경감은 언젠가 또다시 SPO가 돼 학생들과 만날 시간을 고대하고 있다.
/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 허진 기자 h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