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이 사건 이첩 기준을 두고 오는 29일 협의체를 연다. 앞서 공수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외압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권만 주고 기소권은 주지 않는 이첩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권한’을 이첩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맞지 않다며, 공수처가 사건 이첩을 결정한 이상 수사와 기소는 모두 검찰이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에겐 재량 이첩 권한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공수처장의 재량 하에 단서를 단 이첩을 할 수 있고 이는 공수처법에 보장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 관련 이성윤 중앙지검장의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을 검찰로부터 이첩 받은 김 처장은 이 사건의 공소제기 여부는 공수처가 판단해야 한다며 검찰은 수사 완료 후 사건을 다시 이첩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공수처법 24조 3항은 ‘공수처장은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하면(재량)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같이 공수처장의 재량이 보장돼있다면, 공수처장은 단서를 달지 않고 단순 이첩을 할 수가 있고, 아니면 기소권은 유보한 상태로 단서를 달아 이첩할 수도 있다. ‘유보부 이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김 처장은 국회 발언에서 “이첩의 대상은 사건인 게 맞다”고 하면서도 공수처법에 따라 수사권 및 기소권을 행사하는 것은 우선권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공수처장의 재량은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권한은 ‘이첩’하는 게 아니라 ‘위임’하는 것”
검찰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권한 행사의 우선권이 있다며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실상 수사권만 이첩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공소제기 관할은 공수처에 여전히 있다는 주장은 사건을 이첩했다는 게 아니라 권한만 주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 안팎은 수사권과 기소권 같은 권한은 이첩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대신 권한은 ‘위임’하는 거라는 설명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권한은 (남에게 맡긴다는 뜻의) 위임을 하는 것이지 (전달·이송한다는 개념의) ‘이첩’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권한을 이송한다'는 말 자체가 어색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위임의 개념은 검찰청법에 있다. 검찰청법 7조의2는 ‘검찰총장,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 및 지청장은 소속 검사로 하여금 그 권한에 속한 직무의 일부를 처리하게 (위임)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김 처장이 주장한 것처럼 수사권한만 검찰에 주려면 이같은 ‘위임’ 조항이 있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공수처법에는 그런 조항이 없다.
이는 이첩을 하는 것은 ‘사건’만 가능하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사건 기록이라는 물체 자체를 넘기는 게 ‘이첩’이고, 그 사건과 물체(기록)를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이다. 김학의 사건 수사팀장 이정섭 부장검사가 주장하기도 한 내용이다. 이 부장검사는 “이첩이란 특정 기관이 조사한 사건을 다른 기관으로 보내 그 기관이 사건을 처리하게 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첩 재량’은 있어도 ‘재량 이첩’은 없다”
검찰과 법조계 일각에선 따라서 김 처장이 말한 공수처장의 재량은 유보부 이첩 등 이첩의 ‘형태’를 결정할 수 있는 재량이 아니라 이첩을 할 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재량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량 이첩’이 아니라 ‘이첩 재량’인 것이다.
검찰도 이첩을 결정할 수 있는 재량이 보장돼 있지만 ‘이첩 재량’으로만 해석해왔다. 형사소송법 대통령령인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18조는 다음과 같이 돼 있다. ‘검사는 다른 수사기관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때 사건을 검찰청 외의 수사기관에 이송(이첩)할 수 있다.'
해당 조항은 검사가 사건을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때’ 이첩을 할 수 있다고 한 면에서 공수처법 24조와 단어까지 같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도 이첩 재량은 있으나 공수처처럼 일부 권한만 타기관에 주려 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수처 논리대로라면 검찰은 경찰에 수사권만 주고 수사종결권을 안 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검찰과 법조계 일각 분석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공수처가 검찰에 사건을 이첩하면 검찰은 검찰청법과 형소법에 따라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해 사건을 처리하면 된다. 그리고 검찰이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면 경찰은 경찰청법과 형소법에 따라 수사권만 행사하고 사건을 송치하면 된다. 검찰이 검찰청법과 형소법에 따라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갖고 있는데 공수처가 기소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셈이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국민은 법에서 해선 안 된다고 하는 일 외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는 반면 국가기관은 법에서 규정된 것만 할 수 있다”며 “특히 수사기관은 인권 침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기관으로서 법을 되도록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해석해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공수처는 권한을 이첩한다는 주장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며 “이첩 대상은 사건이 맞고 그 점에서 양측 이견은 없다”고 강조했다.
29일 열릴 협의체에서 공수처와 검찰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결국 두 기관은 김진욱 처장의 말대로 법원 판단을 받아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처장은 “만약 (검찰 주장대로) 재량 이첩이 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면 검찰은 그대로 (이 지검장 수사 외압 의혹 사건에 대한) 기소권을 그대로 행사할 것이고, 그 경우 법원이 공수처가 기소권 행사를 유보한 이첩이 유효하다고 보면 검찰의 기소에 대해 공소를 기각할 것”이라며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보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손구민 기자 kmso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