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 늘 재산이 마이너스였는데…"
이두봉 대전지방검찰청장이 올해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에서 재산이 공개되자, 대검찰청 한 관계자가 “깜짝 놀랐다”며 한 말이다. 재산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생긴 게 신기하다는 것이다. 이 지검장이 올해 신고한 재산은 3억4,716만원이다. 이번 고위 공직자 평균 재산인 14억1,297만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그의 차는 2007년식 '아제라'(그랜저 구형 모델)로 현재가액(시세)은 67만5,000원이다. 이 대검 관계자는 “이두봉 검사장은 월급을 받으면 후배 검사들에게 밥과 술 사주느라 돈을 거의 못 모았다”고 말했다.
고위직 검사 가운데 1999년식이나 시세가 불과 35만원으로 평가받는 등 '낡은 차'를 소유한 검사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에는 검소한 삶을 살면서 실제 재산도 적은 경우가 있지만, 반대로 ‘낡은 차’가 무색하게 수십억원대 재산가도 많다. 법조계에서는 고위 검사의 ‘낡은 차 고집’에 대해 사회적 시선에 갇힌 우리 검사사회의 단면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을 통해 공개된 35명 대검 소속 고위 검사의 소유 차를 보면 최경규 창원지검장이 소유한 차 가격이 35만원으로 가장 낮다. 이 차는 2003년식 SM5다. 이두봉 대전지검장과 구본선 광주고검장도 소유한 차 가액이 100만원 밑이다. 구 고검장도 이 지검과 같은 차인 2007년 '아제라'를 67만9,000원으로 신고했다.
가격이 100만원대인 차를 소유한 고위직도 6명(차 없거나 두 대 이상 소유자 제외)이다. 장영수 대구고검장은 1999년 소나타를 112만원에,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2001년 SM5를 113만원에, 이정수 서울남부지검장은 2013년 그랜저를 122만원에, 김후곤 서울북부지검장은 2005년 소나타를 126만원에, 복두규 대검 사무국장은 2003년 싼타페를 158만원에, 조재연 대구지검장은 2007년 소나타를 191만원에 신고했다. 대부분 고위 검사들은 차를 직접 운전한다고 알려졌다. 검찰에서 운행 중인 관용차는 10대 미만이다. 2019년 10월 고검장급 이상에만 관용차를 배정하기로 기준을 바꾼 탓이다. 지난 19일 대검에서 열린 '한명숙 사건'을 판단할 확대 회의에 참석한 고검장들은 대검에서 제공한 관용차를 탔다.
재산이 많게는 수십억대인 다른 고위 검사들과 비교해 '가난한' 검사는 이수권 울산지검장과 이두봉 대전지검장, 조재연 대구지검장, 최경규 창원지검장이다. 이수권 지검장의 재산은 2억5,255만원으로 가장 낮았다. 조 지검장(2억9,107만원)과 함께 재산이 3억원 아래다. 최 지검장(4억3,241만원)과 구본선 고검장(5억2,176만원)도 다른 고위 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산이 낮다. 이들은 ‘차를 보면, 재산이 가늠된다’는 상식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 사례인 셈이다. 하지만 ‘차’와 실력은 별개로 보인다. 이들은 굵직한 현안 수사로 맡는 ‘간판 검사’이기도 하다. 이두봉 대전지검장은 월성 원전 수사 1호기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조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의 수사의 핵심이었던 특수2부 출신이다. 대검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검사들이 월급을 받아도 수사비로 다 써서 부유한 처가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집 한 채도 마련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반대로 낡은 차를 타면서도 정작 재산은 수십억원 규모인 ‘자산가 검사’도 적지 않다. 가격이 100만원대인 차를 타는 고위 검사 6명 중에서도 5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정수 지검장은 차 가액이 122만원이지만, 재산은 30억526만원이다. 김후곤 서울북부지검장은 21억4,776만원, 대구고검장은 18억345만원, 한동수 감찰부장은 17억7,726만원, 복두규 대검 사무국장은 11억1,547만원이다. 여기에 본인은 차 없이 배우자가 201만원짜리 2007년 싼타페를 모는 배용원 전주지검장도 재산은 30억9,869만원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신고한 차가 없지만, 재산이 69억978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고위 검사의 ‘낡은 차 고집’은 검사 사회 특성 때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사회가 ‘검사는 00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한 결과인 것 아니냐는 것이다. 00에 들어갈 대표 단어가 청렴이다. 이런 압박은 공직 사회 내에서도 검찰이 더 심하다는 평가도 있다. 25명 모두 1억원이 넘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외제차가 없다. 젊은 검사 사이에서는 검사 사회가 너무 경직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고위직은 이목이 집중되다보니 차를 통해 검소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정말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검사도 있겠지만, 드러나지 않는 부를 축적한 검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