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공기업

[국정농담] 文정부 집값 폭등이 투기꾼·기획부동산 때문일까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文대통령, ‘전셋값 인상 논란’ 김상조 속전속결 교체

'부동산 부패청산' 마스크 착용하고 강경 대응 지시

박주민도 논란…김태년 "토건 투기세력 부활 안돼"

그간 문제 없던 거래까지 '적폐' 지목에 '자승자박'

규제 정책에 집값 올랐지만 여전히 '투기근절' 강조

LH사태, 집값 무관...스스로도 못 지킬 '관치'가 관건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연합뉴스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서 번진 정치인·공직자들의 부동산 논란이 결국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퇴진으로까지 이어졌다. 정부는 부동산 문제에 민심이 차갑게 식는 분위기를 감안해 논란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부동산 적폐청산’이 또 다시 일부 투기 관련자에게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LH 직원 등 내부 정보를 이용한 땅 투기 문제는 국민 분노의 도화선이 된 집값 급등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년 간 부동산 시장이 유례 없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LH 사태는 여론을 흔들 이슈가 아니라 수사기관의 수사만 받으면 되는 별도의 문제로 끝났을 가능성이 크다. 진짜 본질은 인간의 기본 욕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에서 크게 괴리된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이라는 지적이다. 현 정부의 관치 중심 부동산 철학과 4년 내내 이어진 집값 상승만 아니었다면 공직자·정치인들의 다주택 소유나 전셋값 인상, 땅 매매 등은 도덕적·법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안 됐을 일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다주택자, 건설사, 기획부동산, 부동산 투자업계 큰 손, 부동산중개업자, 강남 고가주택 소유자들은 이전 정부에서도 늘 존재해 왔다. 이들에게 불법·탈법 행위가 있다면 정당한 법적 처분을 내리는 게 마땅하나, 이와 무관하게 이들이 조직적인 담합이나 각개전투 방식으로 전국의 부동산 가격 전체를 좌지우지했다는 증거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 LH 관련 의혹이 제기된 3기 신도시 계획도 이미 부동산 폭등 정국이 이어진 상황에서 현 정부가 ‘고육지책’ 식으로 내놓은 공급 대책이었을 뿐이다. 정부의 ‘투기 근절’ 기조가 부동산 문제 근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자칫 흔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투기꾼들’이 선의로 무장한 정부에 맞서 시장을 교란한다고 ‘믿는’ 사람들과 이들의 지지를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장경제에 부합하는 대책을 내놓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연합뉴스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연합뉴스


文, ‘전셋값 인상 논란’ 김상조 전격 경질

LH 사태로 국정 지지율이 수직 하락하는 상황에서 올해 첫 반부패정책협의회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던 청와대는 협의회 바로 전날 최악의 악재를 맞았다. 부동산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김상조 전 실장 자신이 전셋값 인상에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관보 등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부부 공동명의로 소유 중인 청담동 한신오페라하우스 2차 아파트(120.22㎡)에 전세를 주고, 서울 성동구 금호동 두산아파트(145.16㎡)에 전세로 살고 있다. 김 실장은 한신오페라하우스 2차 아파트와 관련해 지난해 7월29일 현 세입자와 계약을 갱신하면서 전세금을 기존 8억5,000만원보다 14.1% 올린 9억7,000만원을 받기로 했다. 이때는 임대료 인상 폭을 5%로 제한한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고작 이틀 전이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지난달 28일 “전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셋값이 크게 올라 목돈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청담동 전셋값도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이 올린 전셋값 규모가 자신이 거주하는 전셋값 인상 금액보다 7,000만 원이나 많았던 데다 그가 보유한 예금도 13억9,081만원에 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김 전 실장의 사의를 받아들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취재진에게 “전날 밤 김 실장이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사임의 뜻을 전했고 아침에 대통령께 직접 사임 의사를 밝혔다”며 “(김 전 실장이) 부동산과 관련된 상황이 굉장히 엄중하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김 전 실장 경질과 동시에 이호승 전 경제수석비서관을 곧바로 후임으로 임명했다. 김 전 실장은 브리핑 자리에서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이 엄중한 시점에 국민들께 크나큰 실망을 드리게 된 점 죄송하기 그지없다”며 “2·4 대책 등 부동산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빨리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대통령을 모신 비서로서 해야 할 마지막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던 장하성 초대 정책실장(현 주중대사), 과천 아파트 단지 앞 전철 노선 신설로 조롱을 받았던 김수현 전 실장에 이어 김상조 전 실장까지 현 정부의 모든 청와대 정책실장이 부동산 문제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이들 중 누구도 범법 행위를 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죄 아닌 죄라면 부동산 폭등을 전혀 잠재우지 못한 점과 국민들에게 그토록 문제라고 강조하던 부동산 이익을 스스로 얻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주도한 적폐의 늪에 ‘자승자박’ 식으로 빠진 게 죄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마스크에 ‘부동산 부패청산’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마스크에 ‘부동산 부패청산’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연합뉴스


‘부동산 부패청산’ 마스크 쓴 文…공직자 재산등록·전국민 규제는 논란

29일 김 전 실장이 전격 교체된 상황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는 예상보다 더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부패청산’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마스크까지 쓰고 입장해 부동산 적폐 청산 의지를 무언으로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막대한 부동산 불로소득, 갈수록 커지는 자산 격차, 멀어지는 내 집 마련의 꿈, 부동산으로 나뉘는 인생과 새로운 신분 사회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손대지 못했다”며 “이번 사건을 철저하고 단호하게 처리하는 한편 부동산 부패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기 관련 수사·조사를 거론하면서는 “하다 보면 조사와 수사 대상이 넓어질 수도 있다. 멈추지 말고 정치적 유불리도 따지지 말고 끝까지 파헤쳐 주기 바란다”며 “드러난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처벌하고 부당 이익을 철저하게 환수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정부는 투기 근절을 위해 1년 미만의 토지 거래에 대한 양도세율을 기존 50%에서 70%까지 높이기로 했다. 또 가계 비주택담보대출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적용하고, 100일간 부동산투기집중신고기간을 설정해 신고 포상금을 최대 10억원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을 조사하는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도 경찰 홀로 주도하는 방식에서 검사·수사관 인력을 500명 이상 투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울러 부동산 상설 감시 기구인 ‘부동산거래분석원’도 이른 시일 내에 출범시키고,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 제도도 강화하기로 했다.

다만 △비공개·내부 정보를 불법·부당하게 활용한 투기 행위 △가장 매매, 허위 호가 등 시세 조작 행위 △허위 계약 신고 등 불법 중개, 교란 행위 △불법 전매, 부당 청약 행위 등 4대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전 국민을 향했다는 우려도 나왔다. 추가 규제가 시장 거래를 더 옥죌 수 있다는 우려였다.



재산 등록 대상을 전체 공직자로 확대하겠다는 방안도 공직 사회의 반발을 샀다. 재산 등록 대상이 약 150만 명이 넘는데 투기와 무관한 공무원들까지 피해를 입는 조치라는 지적이었다. 여기에 등록 대상에 포함되는 배우자와 직계존비속까지 더하면 그 수가 약 60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실제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 일부 공무원 노조들은 이 조치를 취소하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연합뉴스


박주민까지 논란…김태년 “토건 투기세력 부활 안돼”

이 와중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전셋값 논란에 빠지며 여권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박 의원이 임대차법 시행 직전인 지난해 7월 보증금 3억원, 월세 100만원에 임대했던 서울 신당동 아파트 계약 조건을 보증금 1억원, 월세 185만원으로 상향했다는 논란이었다. 보증금전월세 전환율 4%를 적용하면 그가 아파트 임대료를 9% 올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 의원은 “신규 계약이기에 전월세 전환율의 적용을 받지 않아 시세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며 “부동산중개업소 사장님이 제 입장을 알고 있기에 시세보다 많이 싸게 계약하신다고 했고 저도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가 전월세 상한 5%법을 대표 발의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논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부동산 민심 악화로 4·7 재보선 판세가 기울자 여당은 다급하게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은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여당이 주거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정책을 세밀히 만들지 못했다”며 “무한책임을 느끼며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청년과 서민은 저축으로 내 집을 가지려는 꿈을 거의 포기하고 있다”며 “그런 터에 몹쓸 일부 공직자는 주택 공급의 새로운 무대를 투기의 먹잇감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 집 마련 국가책임제’, ‘50년 만기 모기지 대출 국가보증제’, 청년 월세 지원, 1인 가구용 소형주택 공급 확대, 부동산 정책과 주거 복지를 전담하는 주택부 신설 등을 제안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은 1일 다소 오묘한 사과문을 내놓았다. 김 직무대행은 이날 국회에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자세를 혁파하겠다”며 고개를 숙이면서도 “1주일, 한 달 안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어 부동산을 다시 투기판으로 만드는 투기사회, 부자와 가난으로 지역과 계층이 구분되는 차별사회, 철거민의 생존 몸부림이 폭력으로 규정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야만사회, 불법사찰의 유령이 배회하는 통제사회였던 이명박·박근혜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집값 폭등과 투기에 대한 분노 때문에 집값을 올리려는 토건 투기세력을 부활시켜서는 안 된다”며 “지난 4년간 요동치던 집값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고도 말했다.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연합뉴스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연합뉴스


조기숙 “내로남불 위선”…‘투기 세력’이 근본 원인인지 의문

최근 부동산 민심의 폭발은 단순히 LH 사태, 그 자체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장 참여 자유를 막는 잇딴 정부 규제, 끝을 모르는 주택 시장 폭등 등으로 지난 4년간 쌓인 국민들의 불만이 LH 사태를 계기로 몽땅 쏟아져 나왔다고 보는 게 맞는다는 말이다.

다만 부동산 문제의 근본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갈린다. 전통적 정부·여당 지지자들은 여전히 투기 세력을 막는 것을 우선적 해법으로 보고 현 정부가 투기꾼들을 완전히 근절하지 못한 걸 실패로 진단한다. 정책 방향 자체는 분명 옳았으나 약했던 규제 강도, 보수 정권과 글로벌 시장에서 유포된 유동성, 일부 정치인·공직자들의 솔선수범하지 않는 자세 등이 문제였다는 진단이다. 정부 역시 아직까지 ‘투기꾼들이 부동산 교란의 주범’이라는 믿음 안에서 대책 마련을 고심하는 모양새다.

반면 나머지 상당수 국민들은 투기의 문제는 최근 몇 년 간 집값 폭등과 전혀 상관이 없거나 매우 지엽적인 사안으로 본다. 이전 정부 때도 내내 존재했던 다주택자나 땅 소유자들을 투기꾼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획부동산 등이 영향을 미치는 곳은 특정 지역에만 국한된다. 이들은 선의의 정책들을 4년 내내 이길 정도로 음지에서 엄청나게 세력화된 ‘투기 세력’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한다.

이들 국민은 대신 25번에 걸친 관치와 규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 실패에 주목한다. 정책을 악용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서 별도로 파생된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3기 신도시 지정, LH 직원들의 일탈 적발 전에도 집값은 이미 쉬지 않고 급등세에 있었다. 정부와 그 핵심 지지자들이 말하는 ‘투기꾼’ ‘적폐’란 실상 ‘집값이 최소한 물가를 따라 우상향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일반 국민들의 심리’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는 해석도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30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무능보다 나를 더 화나게 하는 건 내로남불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들도 자신과 다를 바 없이 적절한 욕구로 부동산 시장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면 절대로 내놓을 수 없는 정책으로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망가뜨렸다”며 “현 정부는 무주택자들의 갭 투자를 투기라며 대출을 원천 봉쇄함으로써 현금이 없는 무주택자는 폭등하는 집값을 보며 손 놓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호승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1일 브리핑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다”라며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풀리고 자산 가격과 실물 경제가 괴리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짚었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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