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벽에 둘러싸인 채 꺼져 있던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 설치작품 ‘해인사 판타지’가 10여 년 만에 제 모습을 드러냈다. 뇌졸중 이후 투병 중이던 백남준은 지난 1998년 경남 합천 해인사 성보박물관 설계를 맡은 건축가 김석철(1943~2016)의 의뢰를 받아 2001년에 작품을 완성했다. 진영선(76)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명예교수가 12개의 모니터를 에워싸는 벽화를 그렸으니 백남준·김석철·진영선 세 사람의 컬래버레이션인 작품이다. 팔만대장경을 주제로 한 백남준의 ‘해인사 판타지’는 해인사의 특별한 볼거리로 소개됐으나 정작 2010년을 전후로 작품 앞에 가벽이 설치됐다. 10년 가까이 ‘벽장 안(內)’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던 작품이 지난해 말 대대적인 내부공사를 계기로 가벽이 제거되면서 ‘발굴되듯’ 빛을 보게 됐다.
지난 달 23일 현장을 방문한 결과 12개의 모니터를 통해 12개 채널의 영상작품도 작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해인사 판타지’와 한 몸으로 조성된 진영선의 벽화가 부분적으로 훼손된 것을 비롯해 백남준이 원래 계획했던 ‘TV부처’의 묘연한 행방 등은 안타까움으로 지적된다.
백남준과 해인사의 인연
‘해인사 판타지’의 시작은 지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00년 고찰 해인사가 대장경 이운(移運) 600년을 맞아 옥류동계곡 삼거리에 성보박물관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김석철은 당시 인터뷰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들던 때나 (IMF외환위기의) 지금이나 엄청난 시련기라는 점에서 상황이 비슷하다”면서 “힘들수록 우리 문화를 아끼고 발전시켜야 한다. 문화가 힘이다”라는 말과 함께 백남준의 작품을 공간 맞춤형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남준과 김석철은 열정과 인맥을 동원해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미술제인 베네치아비엔날레(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 조성을 이뤄낸 ‘콤비’다.
이 작품이 구상되던 2000년의 백남준은 투병 중이었음에도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활동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한국인 최초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 레이저를 소재로 한 당시 전시는 곧이어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와 호암갤러리로 이어졌다.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백남준은 “우리 역사 속 최고의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해인사에서 김석철 건축가의 설계로 박물관을 만들며 의뢰를 해 왔다”면서 “전란 중에도 중국 등 각국의 불경을 모으고 분류해 만든 팔만대장경은 21세기를 앞두고 한국인의 뛰어난 정보처리 능력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주제”라며 의욕을 내보였다.
백남준은 ‘해인사 프로젝트’에 국내 프레스코(벽화의 일종) 1세대 작가인 진영선 교수를 참여시켰다. 일찍이 1960년대 유학파로 프레스코를 전공한 진 교수는 고구려 고분벽화 등 우리 전통을 복원해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백남준과 진영선은 2000년 1월 1일 밀레니엄의 시작을 알리며 임진각에서 열린 ‘DMZ퍼포먼스’를 비롯해 세종문화회관 로비에 설치된 ‘호랑이는 살아있다’ 연작, 경기도 광주의 경기도자박물관 내 설치작품 등 다양한 작품에서 협업했다. 최근 종로구 평창동 스튜디오에서 만난 진 작가는 “백남준·김석철과 함께 ‘해인사 트리오’로 작업을 진행했는데 와병 중인 백 선생은 한국에 올 수 없어 미국으로 찾아가거나 팩스 전송 등으로 의견을 나눴다”면서 “벽화는 2000년 여름방학 2개월 동안 당시 고려대 학생들과의 협력으로 제작됐고 백 선생의 작품 설치와 박물관 완공은 2001년에 끝났다”고 말했다. 폭 30m, 높이 7.5m의 벽화에는 팔만대장경이 제작돼 해인사로 이운되는 과정, 장경각의 모습과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제52호)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의 내용이 담겨있다.
건축가 김석철은 1995년에 문 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외에도 ‘선비의 나라’를 연상시키는 갓 모양의 예술의전당 등으로 유명하다. 해인사 성보박물관도 완만한 둥근 지붕이 전통과 문화가 조화를 이룬 예술의전당의 축소판 같은 인상을 풍긴다. 1998년 시작된 박물관 조성사업은 IMF 외환위기 등 대내외 난관에 부딪힌 것으로 전한다. ‘백남준의 손’으로 불리는 테크니션으로 1990~2000년대 작품 대부분의 제작에 관여한 이정성(77) 아트마스타 대표는 “백남준 선생이 거동은 불편했지만 여타의 작품제작 때처럼 팩스로 드로잉을 보내고 전화로 작업을 지시하고 소프트웨어(영상)를 제작해 보내주셨다”면서 “원래 작품은 12채널 비디오 설치작품 맞은편에 ‘TV부처’가 자리 잡아 벽화 전체를 바라보는 게 완성형인데, 박물관 건립 막바지에 대금 지급 차질 등 문제가 생겨 TV불상은 결국 이 곳에 놓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총괄한 김 건축가가 지난 2016년 별세하면서 이 ‘TV부처’는 미궁으로 사라진 상황이다.
우여곡절 ‘해인사 판타지’
백남준의 작품을 품은 해인사 성보박물관은 2001년 완공됐고 2002년 7월 정식 개관과 함께 일반에 공개됐다. 백남준 타계 이듬해인 2007년 4월에는 ‘백남준의 미공개 유작’이라는 점을 강조해 해인사가 적극적으로 작품을 알렸다. 하지만 2010년을 전후로 벽화 앞에 대형 가벽이 가림막처럼 설치돼 백남준의 작품은 갇히는 신세가 됐다.
이곳 성보박물관 부관장 응기스님은 그 이유에 대해 “현대미술축제인 ‘해인아트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박물관 2층을 전시 공간으로 이용하기 위해 가벽을 설치한 것이 10년 가까이 존치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해인아트프로젝트’를 추진하다 중도 사퇴한 김선정 당시 총감독, 2013년 해인사 경내 곳곳에 미술작품을 설치했던 해인아트프로젝트의 김지연 큐레이터 등이 “박물관 내 백남준 작품을 보지 못 했다”고 하는 이유다.
해인사 측은 작품관리를 고민하다 지난해 하반기 대대적인 공간 보수공사를 진행하면서 폭 30m의 가벽을 철거했다. 지금도 작품 앞 천장부에는 가벽이 존재했다 제거되면서 생긴 ‘뜯긴 흔적’이 남아있다.
백남준의 작품이 드러난 것은 다행이나 진 교수의 작품 일부는 훼손된 상태다. 원래는 천창 같은 돔에 푸른색의 은하수 별무리를 그려두었으나 현재는 흰색이 덧칠돼 작품이 사라졌다. 사진으로 이를 확인한 진 교수는 “천장화를 그리듯 비계장비를 동원해 눕다시피 한 자세로 그리느라 특히 힘들었고 유난히 공들인 작업인데 유감”이라고 말했다. 벽화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면서 안타까움을 밝힌 응기스님은 “벽화 관리와 함께 비디오 플레이어의 업그레이드 등 백남준 작품의 장기 보존을 위한 방안을 학예실과 함께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백남준 작품의 우여곡절은 비단 ‘해인사 판타지’ 만이 아니다. 대전시립미술관 소장품이 된 ‘프랙탈 거북선’은 1993년 대전세계엑스포(EXPO) 때 제작된 후 외부 전시관에 방치돼 물에 잠긴 상태로 발견됐고 제대로 된 전시장을 찾지 못해 몇 년 동안 헤매기도 했다. 청와대 춘추관에 소장된 백남준 작품도 수년간 고장으로 꺼져 있다 복원됐다. 백남준 유작 중 최대 규모의 작품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다다익선’은 모니터 노후화로 지난 2018년 2월부터 작동 중단 상태다. 복원 방식을 두고도 논란이 많았으며, 결국은 ‘원형 보존’을 기조로 3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내년까지 복원과 재가동을 준비 중이다.
미술평론가인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내년은 백남준 탄생 90주년인 해이고 백남준이 국가대표급 예술가로 추앙받음에도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작품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른 문화재들을 극진히 관리하면서 정작 실제로 우리 가까이에 있는 문화재급 작품을 소홀히 하는 편향성과 편중성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합천=조상인기자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