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동헌칼럼] 백신이기주의와 경제안보

고려대 교수경제학

접종 차질에 집단면역 계획 불투명

백신 여권 발급해 경제 고립 막고

인플레 대비 선제적 통화정책 필요

정부 역량 총동원 백신확보 나서야





지난해 지구촌을 초토화시켰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백신이 등장하면서 세계가 치열한 백신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달 2일 현재 인구 대비 접종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이스라엘로 60%를 넘었다. 영국은 약 46.1%이고, 미국은 접종자가 1억 명에 달해 전체 인구의 30%를 넘어섰다. 코로나19가 종식되기 위해서는 집단면역이 형성돼야 한다. 이는 자국 인구의 약 70% 이상이 접종을 받으면 이뤄진다. 세계 각국이 신속히 집단면역 달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면서 백신 확보에 대한 ‘자국 우선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이 종식되려면 백신이 전 세계에 보급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백신 공급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백신 보급을 위한 국제적 공조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약 96만 명이 1차 접종을 완료해 접종률이 1.86%에 불과하다. 7%대인 세계 평균 접종률에도 훨씬 못 미친다. 백신 자국 이기주의 전쟁 속에서 한국의 경제 회복은 요원하고 경제 안보조차 숨 막히는 위협을 받고 있다.



정부는 당초 상반기 1,200만 명분의 백신 물량 확보와 9월 국민 70% 1차 접종, 11월 집단면역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확보 가능한 물량은 약 890만 명분으로 연내 집단면역은 불투명해 보인다. 예상치 못한 백신 확보 지연에 정부는 선제적인 대응으로 경제 안보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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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백신 접종자가 자유롭게 해외를 오갈 수 있도록 하는 ‘백신 여권(Vaccine Passport)’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스라엘·아이슬란드 등은 백신 여권을 발급했다. 미국과 영국 등 백신 접종이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들에서는 낮은 위험성을 감수하고 국내외 여행 등 일상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업무나 여행 목적으로 외국을 오가는 일이 본격화하기 시작하면 모든 영역에서 경제 활동이 재개되는데 백신 보급이 늦어 정부가 폐쇄적이거나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면 대외 지향적 한국 경제는 고립되고 경제 회복은 더 지연될 수 있다.

둘째, 선진국 통화 정책 변화(금리 인상)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미 미국은 백신 보급이 올 상반기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신속히 진행되면서 경제 정상화가 가시화되고 인플레이션 가능성으로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바꿔 유동성 공급 규모를 줄여 가는 ‘양적 완화 축소(테이퍼링·tapering)’를 머지않아 시도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저금리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경제 침체가 여전하고 가계·기업·정부의 부채가 매우 높은 상황이지만 선진국 금리 상승에 따른 외국인 자본 유출 우려 등으로 경제 연착륙을 위한 금리 인상에 부담이 크다. 따라서 통화정책 변화에 실기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안전판을 확보하는 일이 경제 안보를 위해 중요하다.

셋째, 정부는 백신 확보 정책을 적극적으로 구현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세계 경제 10위권에 속한 한국 경제가 백신 접종률에서는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는 현실에 국민들은 참담하기조차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 심리를 살리기 위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라도 정부의 모든 역량과 외교력을 집중해 백신 확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백신 보급 단계별로 치밀한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해 경제 상황 변화에 유연히 대처하고 정책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19 변종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정책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노력으로 국민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백신 자국 이기주의를 뚫고 경제 안보를 지키는 것이 절실하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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