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입한 중국산 김치는 28만톤이나 됐다. 김치를 포함해 우리 시장에서는 중국산 채소와 양념 등이 넘쳐난다. 식량 자급도 안되는 나리인 중국은 오히려 대량의 농산물을 한국에 보내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가까운 산둥성에서 오는 물량이 많다. 해당 지역 입장에서는 자국 내지만 먼 다른 지역으로 보내느니 가까운 한국에서 비싼 값에 수요를 찾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저질 중국산 농산물 때문에 곤혹이지만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식량이 해외로 나가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다. 중국의 농산물 자급률은 현재 80% 내외다.
#.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해 8월 11일 다소 뜬금없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언급을 전했다. 발표성 기사는 대략적으로 “시 주석이 음식 낭비를 막고 절약 습관을 키울 것을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일반적인 관행과는 달리 당시에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언제 어디서 이런 말이 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음식 낭비를 않고 절약하자는 것은 당연한데 국가 최고원수가 그런 것까지 따져야 하느냐는 말도 있다. 지금까지도 중국은 거의 모든 관영 매체를 총동원해 음식절약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상 떡하니 차리는 과시를 미덕으로 여기는 중국인들의 심리가 변할지는 의문이다.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는 중국 농촌을 본 사람은 중국에 식량이 부족하다는데 의구심을 갖곤 한다. 답은 단순하다. 중국은 농토가 넓은 대신 인구도 많다. 전세계 인구의 20% 가량인 14억명을 먹여 살리기 위한 농산물이 중국에는 부족할 뿐이다. 크게 보면 지구의 육지 면적에서 차지하는 중국 영토의 비중은 6% 가량이다. 농경지에 관해서는 기준에 따라 다른데 대략 전세계 농경지의 7~10%가 중국에 있다고 본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월드팩트북에 따르면 중국의 농경지 비중은 7.2%다.
물론 이런 것은 기본전제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비옥한 농토는 대규모 인구를 먹여 살릴 기반이 된다. 중국은 그렇지 못해서 문제일 뿐이다. 농토의 국가소유를 기반으로 한 ‘집체 농업’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중국 농업과 농촌의 현대화를 가로막고 농업경제 성장을 정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수급 조절 실패는해외로부터의 대규모 식량의 수입 필요성을 키우며 이는 전세계 농산물 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글로벌 애그플레이션(농산물발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이다. 지난해 중국의 자체 식량생산 증가가 정체된 가운데 수입량은 대폭 늘어났다. 베이징의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식량 수요 급증은 한국의 수입농산물 가격도 뛰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6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총 곡물 생산량은 6억6,949만톤이다. 전년 대비 0.9% 증가한 데 불과했다. 또 작년 육류 생산량은 7,639만톤으로 오히려 0.1% 줄어들었다. 중국인의 주식이나 마찬가지로 육류의 절반 이상인 돼지고기 생산량이 4,113만톤에 그치며 무려 3.3%나 감소한 영향을 받았다. 이외 수산물이 6,545만톤으로 1.0% 증가했다.
곡물 생산량을 기준으로 보면 최근 농업 생산 증가율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지난 2015년 곡물 생산량은 6억6,060만톤이었는데 결국 2020년까지 5년 동안 모두 889만톤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증가율은 연평균 0.3%에 불과했다. 지난 2015년 13억7,400만명이었던 중국 인구가 2019년 14억명으로 4년간 매년 0.5% 늘어난데 비해서도 상승폭이 작은 것이다. 더해서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소비가 늘어나고 고급화되는 데 식량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다. 시진핑 등 중국 수뇌부들의 고민이 커지는 이유다.
중국에서 식량 생산의 정체가 오래된 일은 아니다. 지난 2011년 중국의 곡물 생산량은 5억7,121만톤이었는데 이것인 2015년 6억6,060만톤으로 늘었다. 당시 4년간 연평균 3.9%씩 증가했다. 중국 농업의 고도성장은 2016년 이후로 멈춘 셈이다.
대약진운동 기간이나 문화대혁명 같은 비상사태가 아닌 아닌 상황에서 중국의 곡물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중국이 공산화된, 즉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1949년 1억1,000만톤이었던 연간 곡물 생산량은 1978년 3억톤을 넘어섰고 1996년 5억톤이 됐다. 2013년 6억톤 선까지 돌파했었다.
지난 2016년은 중국에서 경기둔화가 가시화되면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도 처음으로 6%대로 떨어진 해다. 공급과잉과 부채 증가에 따라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전 산업분야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다. 농업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농업 분야는 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에서 내세우는 이른바 ‘삼농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매년 다종다양한 정책 문건을 내놓는데 당연히 ‘1호’가 중요하다. 중공의 1호 문건은 올해를 포함해 18년째 ‘삼농 문제’다. 중공은 지난 2월 21일 ‘1호 문건’을 내놓으면서 “올해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건설에 나서기 위해서는 민족이 부흥하고 농촌이 진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농 문제’는 농업, 농촌, 농민이라는 세 가지의 ‘농(農)’을 의미한다. 삼농 문제를 세분해 보자면 농업은 산업으로서의 농업생산 측면을 가리키고 농촌은 농촌 사회의 빈곤을, 농민은 농민의 생산성 하락과 농민공 등을 각각 말한다. 복잡하게 ‘삼농’이라는 표현을 쓰는데는 그만큼 중국 농업과 농촌 문제가 복잡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중국 농업과 농촌 제도는 한국 등 선진국과 크게 다르다. 농민의 핵심 자산인 토지가 국가 소유라는 점에서다. 물론 도시나 농촌이나 토지는 모두 국가소유다. 과거 대약진운동 시기의 ‘인민공사’ 경험을 따라 농촌의 토지는 특별히 ‘집체(집단) 소유’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현재 농촌의 행정기관이나 표면상 자치기구인 ‘집체’가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민들은 농촌 집체로부터 농토를 빌려 농사를 지은 후 세금 마냥 일부를 집체에 내고 나머지를 자신이 갖는다. 그전까지의 인민공사식 공동생산·분배가 해소되고 1978년 이른바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시작된 이런 제도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농민 개인이 농토를 빌리는 ‘사용권’ 기간은 대략 30년이다.
다만 이런 농토 사용권 시스템에서 개인은 사용권을 양도나 매매할 수 없다.(반면 도시의 토지와 주택의 ‘사용권’은 양도와 매매가 가능하다. 중국에서 아파트를 산다고 할 경우 이 사용권을 사는 것이다.) 결국 개인이 농사를 짓기 싫으면 땅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거꾸로 도시민 등 농촌 외부자도 이런 농토(정확하게는 사용권)를 구입하거나 임대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 자본유치도 어렵다. 농민은 온전히 자신의 자본과 노력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토지 국유 제도가 중국 농업 생산구조를 경직되게 만들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농촌 개발에 농민의 자발성을 유도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정부가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외쳐오던 ‘탈빈곤’도 결국 정부 재정투자를 통해 이뤄졌다. 알리바바나 징둥 등 기업들을 팔목을 비틀어 농촌에 투자하게 한 것도 겉으로는 기업 이익의 사회적 환원처럼 보이지만 농촌 자체로서는 투자유치가 애초에 어렵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중국내에서 도시와 농촌을 두 계급으로 나누는 후커우(戶口·호구) 제도가 이런 농촌의 경직화를 가속화시켰다. 일반적으로 후커우 제도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농민공의 어려움을 해석할 때 쓰이는 용어지만 거꾸로 농촌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수단으로도 지적된다. 해당 농촌의 후커우가 없거나 다른 지역 사람은 농촌 개발에 참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한 토지의 국가소유(농촌에서는 집체소유)를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중국 농촌의 대대적인 변화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중국 농업 전문가들과 토의를 하다 보면 이들은 대부분 이런 오래된 토지소유 문제는 외면한다. 문제임을 알면서도 문제 제기를 안 하거나 못 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식 사회주의와 공산당 체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농업 전문가는 “토지가 집체 소유이고 농민은 집체의 소작농 같은 근본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중국 농업이 발전하기는 어렵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삼농 문제에서 ‘농촌’과 ‘농민’은 그대로 농촌 사회의 농민들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지만 ‘농업’은 도시인들도 관계된다. 농업 생산력이 떨어질 경우 도시의 물가상승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로 인한 농산물 생산량 감소는 곧바로 도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당황한 중국 정부는 해외로부터의 농산물 수입 확대를 통해 이를 해소하기로 했다. 중국 해관총서(우리의 관세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소비침체로 지난해 중국의 총수입은 전년대비 1.1%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하지만 식량 수입은 대폭 늘었다. 작년 한해 동안 중국은 곡물을 1억4,262만톤(508억달러) 수입했는데 이는 전년대비 28% 늘어난 것이다. 또 육류 수입량은 991만톤(307억달러)로 무려 60.4%가 증가했다.
이러한 추세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올해 1~2월 중국의 곡물과 육류 수입량은 작년 동기 대비 각각 47.5%, 27.6% 증가했다. 현재 중국의 식량 수입선이 미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등에 편중돼 있다는 점에서 미중 갈등상황에서 그만큼 대외적인 취약성을 노출하는 셈이다.
중국발 식량 위기에 대한 중국 내외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 당국도 다양한 해명을 내놓고 있다. 량옌 국가곡물·물자비축국 국장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곡물 생산은 17년 연속 풍작이고 생산량은 6년 연속 6억5,000만톤 이상을 유지해 완전히 자급 가능하다”며 “중국의 1인당 곡물 보유량은 470㎏인데 이는 세계평균 400㎏을 넘어선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도 “중장기적으로 볼 때 식량 수급은 긴장 상태가 될 것”이라면서 복잡한 국제정세와 수요 증가, 농토와 용수의 부족, 상대적으로 낮은 농업 이익, 자연재해 등을 향후 중국 농업·농촌의 어려움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