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하루에만 100억 원이 넘는 수수료 수입을 올리면서도 투자자 보호는 뒷전이던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뒤늦게 자정안을 내놓고 있다.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는 실체 없는 자산이라며 제도권 편입에 소극적이지만 최근 정치권의 압박까지 가해지면서 언제 어떤 규제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거래소 영업의 생명줄을 쥐게 된 은행권들이 금융 당국을 의식해 올해 9월 실명 확인 입출금 계정(실명 계좌) 심사를 깐깐하게 할 경우 대형 거래소라도 퇴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거래소들은 공포지수를 개발하고, 상장 사기 사례를 공개하고, 오프라인 고객센터를 다시 여는 등 몸을 한껏 낮추고 있다.
28일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업비트의 원화 시장에 상장한 암호화폐들의 공포-탐욕지수를 산출해 공개했다. 올해 1월 공포-탐욕지수를 출시하기는 했지만 전체 시장을 대상으로만 지수를 산출한 반면 이번에는 주요 개별 암호화폐에 대한 지수를 공개했다. 지수는 변동성이 크고 거래량이 많은 상태에서 가격이 오르면 ‘탐욕’, 반대면 ‘공포’라고 명명했다. 세부적으로 극단적 공포(0∼20), 공포(21∼40), 중립, 탐욕(61∼80), 극단적 탐욕(81∼100) 등 5단계로 나뉜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입출금 지연, 서버 불안정 등으로 불만을 사고 있는 거래소 코인원은 이날 서울 용산구 본사 1층에 오프라인 고객센터를 다시 열고 대면 업무를 시작했다. 2017년 9월부터 2년간 운영하다 2019년 중단했는데 다시 문을 연 것이다. 코인원은 “고객이 전문 상담사와 1 대 1로 만나 거래소 이용 방법부터 거래 상담, 금융 피해 발생 시 대처 방안 등에 대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래소 코빗 역시 이날 핀테크 스타트업 웨이브릿지와 암호화폐 지수 공급 및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기존 ‘김치 프리미엄’ 지수 이외에도 암호화폐 시장 상황을 다양하게 파악할 수 있는 지표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의 실제적인 투자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되는 지수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그동안 거래소들은 업권법이 없어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투자자 보호보다는 암호화폐 상장, 수수료 수입 확대 등 외형 성장에만 치중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거래소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인식이 나빠지자 행동에 나서고 있다. 업비트와 빗썸의 지난 20일 기준 24시간 거래 대금, 수수료를 토대로 하루 수수료 수입을 환산하면 각각 110억 원 내외로 추정된다. 한 달이면 3,000억 원이 넘는 규모다.
9월 24일까지인 금융정보분석원(FIU)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도 영향을 미쳤다. 이때까지 은행 실명 계좌를 발급받지 못하면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한다. 이미 은행과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대형 거래소도 사고가 터질 경우 계좌 발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는 은행 실명 확인 입출금 계좌,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 등 신고 수리에 필요한 최소 요건만 갖추면 됐지만 최근에는 투자자 보호도 중시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며 “거래소들도 투자자 보호 조치가 없으면 신고 수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다고 보고 강화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26일 두나무는 업비트 상장 사기 제보 채널을 통해 접수된 사례를 바탕으로 상장사기 유형을 공개하기도 했다. ‘추후 업비트에 상장하기 위해 00거래소에 오늘 먼저 상장했으니 지금 거래하세요’ 등의 메시지로 투자자를 현혹시키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두나무는 27일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유튜브 및 기타 미디어를 이용한 선동 및 선행 매매 관련 신고 채널을 개설했다고 밝히기도 했고 원화의 1회 및 1일 입금을 1억 원, 5억 원까지로 제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그럼에도 거래소 서버가 먹통이 될 시 투자자가 피해를 보상받을 거래소 약관 등은 미진하다”며 “암호화폐 관련 법규를 통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