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대만 군 참모총장에 임명된 하오보춘은 새 국방 전략을 고심했다. 미국과의 단교 등으로 대만의 군사·외교적 고립이 심화되던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현실적인 본토 수복 전략 대신 도서 지역에서 견제, 대만해협에서 해상·공중 요격, 연안에서 상륙 저지, 내륙에서 저항 등 4단계 방어 전략을 세웠다. 그 일환으로 1984년부터 ‘한광(漢光·Chinese Glory)훈련’을 해마다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대만은 1970년대까지 미군과 연합 훈련을 했으나 1979년 외교 단절로 이 훈련은 중단됐다. 그 대안으로 마련된 한광훈련은 중국의 무력 침공을 가정해 방어·격퇴 능력을 점검하기 위한 군사훈련이다. 매년 4~5월 중 닷새 동안 실시되는 이 훈련은 지휘사령부·참모 등이 참여하는 지휘소 훈련, 실제 병력이 움직이는 야외 기동훈련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 육해공군이 총출동하는 야외훈련은 중국 군의 대만 섬 상륙·공수 작전 방어에 초점이 맞춰진다.
2014년에는 대만 해군 전력의 80%가량에 달하는 90척의 군함이 동원됐다. 간혹 훈련 기간에 외곽 고속도로에서 전투기는 물론 조기 경보기가 뜨고 내린다. 코로나19 탓에 지난해 7월 두 달여 늦춰져 치러진 훈련에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군복을 입고 직접 참관했다. 차이 총통은 격려 연설을 통해 “국가 안보는 가장 견고한 국방력에 의지하는 것”이라며 중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미중 갈등 격화로 대만해협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한광훈련의 강도도 세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시작된 올해 훈련은 예년보다 사흘 길어진 8일간 실시됐다. 대만 군은 미국 참관단이 없었는데도 중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쓰며 훈련을 진행했다. 유사 시 미군과의 연합작전을 염두에 두고 평소부터 대만 군이 영어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철통 같은 안보 태세 구축에 나서고 있는 대만과는 달리 문재인 정부는 북한 눈치를 보면서 한미 연합 훈련을 대폭 축소해 ‘컴퓨터 게임’처럼 만들고 있다. 우리 군의 야외 기동훈련도 간소화되고 있어서 안타깝다. 실전 훈련을 하지 않고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