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과 대면 정상회의를 한다는 점은 그만큼 우리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회담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양국이 주요 현안에 대해 엇박자 내던 것을 해소하고 약화된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협상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의 희망 사항만 되풀이해 내세울 경우 양국 관계가 더 어긋나고 국제적 고립을 자초할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환경을 내세우면서 ‘가치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약화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하고 중국에 대한 압박을 ‘트럼프 플러스’ 수준으로 높이고 있다. 국제 관계가 명분과 가치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외교통으로 평생을 살아온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정치적 올바름’이 국제 관계에서도 통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경제적 실리’가 뒤따라야 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백신 보급이 핵심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 3주년을 맞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의지를 밝혔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남북·북미 대화 조기 재개, 종전 선언 구상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핵심 의제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이번 회담에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정착의 진전을 위한 한미 간의 긴밀한 공조 방안을 비롯해 경제·통상 등 실질 협력과 기후변화·코로나19 등 글로벌 도전 과제에 대한 대응 협력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힌 데서도 잘 나타난다.
미국은 어떨까.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주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가 완료됐다고 밝히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한 실용적 접근이라고 소개했다. 정상 간 합의를 기초로 한 ‘톱다운’ 방식의 일괄 타결에도, 전략적 인내에도 무게를 두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도 다른 ‘바이든식 대북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완전한 비핵화, 외교 중시, 단계적 접근으로 요약된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제시된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대북 정책이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대북 정책의 실용적 접근을 강조하는 미국의 입장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바뀔 가능성은 없다. 더 이상 보여주기식 쇼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기도 하다. 실무자급 협상 재개는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을 남북 관계 개선의 돌파구로 생각하고 그 사안에 매몰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의 입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앞서 열렸던 4월 16일 미일정상회담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일 양국 정상은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두고 기후변화, 대중 공급망 분리, 아시아 역내 안보, 코로나19 공동 대응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하고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일본은 2030년 탄소 배출 삭감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고 미일 기후변화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핵심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반도체를 포함한 민감한 분야의 공급망과 관련된 협력을 강화하고 바이오 기술, 인공지능(AI), 양자 과학, 우주 분야의 연구와 기술 개발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홍콩과 신장위구르에서 발생하는 인권 탄압 상황에 대한 우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 촉구도 공동 선언문에 포함했다. 3월 12일 쿼드(Quad·미국 주도 안보협의체) 정상회의에서 쿼드 백신 파트너십을 체결한 데 이어 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내 백신 접종 확대와 의료 물자 제조 촉진 등 코로나19 공동 대응에도 합의했다. 또한 미일 양국은 디지털 무역의 국제 규범 책정, 기후변화 관련 목표에 기여하는 통상 정책의 책정, 세계무역기구(WTO) 개혁 등에서 공통의 이익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산업 보조금 이용을 포함한 비시장적 무역 관행 등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해 협력해 대처하기로 했다.
준비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자세로 중요도와 시급성을 감안해 의제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실사구시’의 자세로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우리 기업들이 미중 갈등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이 향후 4년간 한미동맹의 향배를 결정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론독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