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하경정)’을 예년보다 빠른 다음 달 중순에 내놓겠다고 선언하면서 기획재정부가 술렁이고 있다. 홍 부총리가 총리 직무대행 꼬리표를 뗀 뒤에도 부총리 직을 계속 유지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3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하경정을 앞두고 홍 부총리 ‘유임론(論)’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기재부는 통상 매년 6월 말에서 7월 초 하경정을 통해 전년 말 제시한 당해년도 국내총생산(GDP)의 성장률 수정치를 발표한다. 이 GDP 성장률에 세입·세출 예산이 모두 연동돼 움직이는데다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 경제주체들의 관심이 쏠리는 이벤트다. 더구나 내년 3월 대선이 예정돼 있어 올 하경정은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경제정책방향이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올 하경정은 부총리 교체 등을 고려해 오는 7월에나 발표될 것으로 전망했다. 홍 부총리가 5월 중 퇴임한다고 가정하면 신임 부총리가 6월 중 취임해 업무 방향을 점검한 뒤 7월 중 정책 방향을 내놓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 부총리가 지난달 말 기자회견을 열어 “6월 중순에 소비 및 투자 촉진 대책을 담은 하경정을 발표하겠다”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홍 부총리가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기재부 경제정책국에서도 경제 활성화 ‘아이템’을 발굴하느라 업무량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전임 부총리가 하경정까지 끝내놓고 교체되면 신임 부총리는 거시 부문에서는 사실상 할 일이 없어지는 셈”이라며 “홍 부총리가 유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유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후임자에게 맡겨도 되는 대형 정책을 전임자가 서둘러 끝내놓고 나가는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홍 부총리의 스타일이 반영된 것일 뿐 유임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여권에서 부동산 정책 등에 대한 수정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홍 부총리가 정책적 ‘자기 부정’은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기재부는 △종부세 과세 기준 12억 원으로 인상 △재산세 감면 대상 확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인상 △취득세 및 다주택자 양도세 인하 등의 부동산 정책을 모두 검토하고 있으나 대출 등 일부 정책을 제외하면 대체로 “정책 효과를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지금 물러설 수는 없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부총리가 누가 되든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뜻이 하경정 조기 발표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세종=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