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사가 싱가포르항공의 항공기 3대를 인수하는 대형 거래를 성사시켰다. 국내외 주요 금융사가 금융 지원에 나선 가운데 우리은행이 항공기 거래에서 처음으로 에퀴티(지분) 투자에 참여한 점도 눈길을 끈다.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국 항공기 운용 리스사 크리안자에비에이션은 지난달 싱가포르항공이 보유한 A350과 B787 등 총 3대의 항공기를 인수했다. A350의 국제시장 거래 가격을 고려하면 5,5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항공기를 매각한 뒤 싱가포르항공이 재임대(세일앤드리스백)하는 구조다. 크리안자는 IMM인베스트먼트가 항공기 구조화 금융 전문사 세리토스홀딩스와 함께 지난 2016년 말 공동으로 설립한 조인트벤처(JV)로 국내에서 유일한 항공기 운용 리스사다.
나범수 크리안자 대표는 “싱가포르항공이 사용한 중고기는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될 만큼 신용도가 높아 펀드 만기 후 재매각할 때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나 대표는 이어 “올 1월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경색됐던 시장의 분위기가 풀리고 있다”며 “특히 이번 거래는 안정적인 국적기 대상 금융 리스와 운용 리스 거래가 시장에서 소화되기 시작했다는 시그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여행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항공기 관련 금융거래는 글로벌 시장에서 사실상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올해 초 백신 접종이 시작됐고 일부 선진국의 경우 집단면역에 이르러 봉쇄 조치를 완화하면서 여행 수요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투자자들도 경계심을 풀고 있다. 이번 거래에 보수적인 국내외 금융사들이 대거 참여한 이유다. 특히 우리은행은 이례적으로 에퀴티 투자자로 참여했다. 그동안 국내 시중은행은 항공기 인수 관련 투자 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선·중순위 투자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리은행은 코로나19 이후 항공기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과감히 후순위 투자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투자로 우리은행은 연평균 수익률(IRR) 기준 10% 이상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선순위 투자자로는 독일 국책은행인 독일재건은행(KfW)과 프랑스 나티시스가, 중순위 투자자는 국내 보험사 등 기관 3곳이 물량을 받았다. 국내외 투자자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크리안자의 주요 주주인 IMM인베스트먼트도 힘을 보탰다.
내년부터 항공기 중고 가격이 치솟을 것으로 보여 한동안 부진을 겪은 항공기 리스사에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나 대표는 “이르면 올해 말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항공기 운행량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항공사들이 코로나19의 여파로 재무적으로 큰 타격을 입어 당분간 신형기를 도입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중고기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윤희 기자 choy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