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여름옷.” 2014년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정되기도 전에 주택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냈다. 당시는 집값이 고꾸라지면서 무리하게 빚을 내서 집을 사던 이들이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던 ‘한겨울’이었다. ‘여름옷’인, 그러니까 호황기에 도입된 대출 규제가 시장을 옥죄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효과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빚 내서 집 사라’는 정책에 많은 이들이 은행 대출을 끼고 집을 샀다. 주택 경기에도 훈풍이 불었다. 경기 부양에도 효과 만점이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던 수출이 2015년부터 19개월 연속 뒷걸음질하는 와중에도 3%대의 성장을 지켜냈다. 성장의 절반을 건설 투자가 책임지는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정책은 동전처럼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시간 차를 두고 규제 완화의 폐해가 우리를 덮쳤다. 가계 부채가 좋은 예다. 2015년에 늘어난 가계 빚만 118조였다. 2016년엔 139조 원이 증가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각각 10.9%, 11.6%에 달했다.
수요가 늘면 물건 값이 오르는 것이 당연지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 앙등이 시작됐다. 집값을 잡겠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이들은 ‘벼락거지’로 전락했다. 이들의 분노로 여당은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지금도 ‘영끌’해 집을 사겠다는 이들이 넘친다. 가계 부채 증가세도 다시 가팔라지고 있다.
아직 주택 시장은 한여름이다. 한데 선거에서 참패한 여당은 ‘빚 내서 집 사라’ 정책의 시즌2를 내놓았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90%까지 완화하겠다는 말이 여당 대표의 입에서 나온다. 실수요자의 ‘주거 사다리’ 지원이란 말로 포장했지만, 결국 빚 내서 집 사란 말과 다르지 않다. 대상만 청년층과 신혼부부·무주택자로 좁혀놓았을 뿐이다. 집값을 잡겠다고 토지거래허가제까지 동원했던 정부 여당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이 여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2014년의 겨울도 끝없이 길 것 같았지만 보란 듯이 여름이 왔다. 필연적으로 겨울은 온다. 그 겨울 추위를 버티도록, 갚을 수 있는 만큼 빚을 내도록 하는 게 바로 정책 당국이 할 일이다. 금융 당국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안전판을 세운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달 발표되는 대출 규제 완화책이 이 원칙을 얼마나 지킬지 두고 볼 일이다.
/김상훈 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