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고]노동이사제, 보편적 선진제도 아니다

김강식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나치 응징 역사 산물인 노동이사

獨 등 유럽국 빼면 운영국가 없어

법제화는 시대역행 과잉규제될것

김강식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김강식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 구성원이 돼 기업의 의사 결정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노동이사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서울시가 노동이사제를 처음 도입한 후 현재 전국적으로 50개가 넘는 지방 공공기관에서 운영되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는 중앙정부 수준에서 노동이사제가 추진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이사제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고 100대 국정 과제에 이를 포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3건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입법안을 발의했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국회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해 관련법 개정 논의를 조속히 실시할 것을 건의하는 안을 의결했다. 다음 순서는 민간기업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노동이사제를 공공기관에 우선 도입하고 이후 4대 대기업, 10대 대기업 순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노동이사제는 기업 지배 구조에 변화를 초래해 기업 의사 결정, 경영 성과, 노사 관계, 경쟁력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노동이사제 법제화를 추진하는 것은 이 제도가 기업 성과와 노사 관계를 개선하는 선진 제도라는 믿음에서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와 차이가 있다. 노동이사제 원조 국가인 독일에서 관련 연구들의 3분의 2는 노동이사제가 기업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거나 기업 성과와 무관하다는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독일 경영계는 노동이사제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이다. 노동이사제는 기업의 유연성과 혁신 저해, 의사 결정 지체, 기업 경쟁력 약화, 기업의 해외 탈출, 외국 자본의 투자 기피를 야기하고 ‘저머니 디스카운트(독일 시장 저평가)’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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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사제는 애초에 기업 성과를 제고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특수한 역사적 산물이다. 전후 연합국은 나치 독일을 응징하고 전쟁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독일의 공업 기반을 완전히 해체해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고자 했다. 독일을 산업혁명 이전 상태로 되돌려 영세농업국화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점령국은 전범기업과 중화학공업 기업의 몰수·해체·통제 절차를 진행했고 노조는 이에 편승해 기업 국유화와 노조의 경영 참여를 요구했다. 이에 기업가들이 노조와 협력해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참여를 받아들인 것이 노동이사제의 기원이다.

노동이사제는 지속적으로 약화돼왔다. 노동이사제 운영 기업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노동이사제를 운영해야 하는 기업 중 법인 등록을 외국으로 옮기고, 법인 형태를 재단법인으로 변경하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기업이 3분의 1이나 된다. 이렇듯 다수 기업은 노동이사제를 부담스러워하며 가능하면 회피하려 한다.

노동이사제는 독일과 주변 일부 국가에서만 운영돼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제도라 할 수는 없다. 독일·프랑스·스페인 등 노동이사제를 운영하는 곳은 모두 유럽 국가이다. 그렇지만 영국·이탈리아·스위스 등 다수 유럽 국가들은 노동이사제를 운영하지 않으며 유럽을 벗어나면 한 나라도 노동이사제를 운영하지 않는다. 미국·캐나다·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 비유럽 국가도 모두 노동이사제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

이상과 같이 노동이사제는 세계적으로 보편성이 있는 제도도 아니며 운영 중인 국가에서도 약화되며 사라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 제도 도입이 필요한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를 법제화해 도입을 강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이 제도가 도움이 된다고 기업이 판단하면 법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도입할 것이다. 국가는 기업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며 입법적 개입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이사제를 법제화하면 이는 시대역행적 과잉 입법으로서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새로운 규제가 될 수 있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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