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웃음이 예뻤던 아이. 밝고 쾌활했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얼굴과 이마 등에 자꾸만 상처가 났다.
# 하루하루 야위어 가던 아이의 몸은 상처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겨드랑이에 살이 있던 부분이 다 없어지고 가죽만 남았다.
# 기아처럼 말라버린 아이는 배만 볼록하게 나와 있었다. 머리에 빨갛게 멍이 든 채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는 아이는 모든 걸 포기한 모습이었다.
생후 16개월. 입양된 지 9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13일 배와 머리 등에 큰 상처를 입고 치료를 받다 숨진 아이. 양부모에게 '진상'이라고 불린 아이의 이름은 정인이다.
"지금까지 봤던 아동학대 피해자 중 손상 상태가 가장 심했다. 학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따로 부검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정인이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한 부검의는 이렇게 말했다. 부검을 위해 국과수로 옮겨졌을 당시 정인이의 온몸은 골절과 멍으로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정인이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고, 울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져나간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는 우리 사회의 뼈아픈 반성과 참회였다.
국회는 수년 동안 방치됐던 입법안을 반영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규칙'을 지난 1월 통과시켰다. 시행규칙은 '학대 신고 후 현장 출동, 초동조사, 신속한 아동분리'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 정부는 지난달 30일부터 1년에 두 차례 이상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들어온 아동은 가해자로부터 즉시 분리해 보호하도록 하는 '즉각분리제도'를 시행했다. 관련 법안 발의와 각종 대책이 쏟아졌지만 보호받아야 할 피해 아동에 대한 대책이 아닌 행정편의주의 중심의 급조된 대책이란 지적이 나왔다.
여전히 아동학대 사건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다. 지난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112에 접수된 아동 학대 신고 건수는 5,69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9%나 늘었다.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부모에 대한 선고 공판이 14일 열린다. 이들이 어떤 선고를 받든 정인이가 다시 살아돌아올 수는 없다.
3,000원짜리 액자 하나와 함께 소아암으로 숨진 아이들을 위한 무료 장지에 묻힌 정인이의 넋을 고이 떠나보낼 수 있는 길은 다시는 정인이 같은 아이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부끄럽기만 한 지금의 부산스러움 속에 담긴 많은 이들의 진심이 아주 조금이라도 하늘에 있는 정인이에게 닿기를 바란다. 간절함을 담아 가슴에 꾹꾹 눌러써본다. '정인아 미안해'
/김경훈 기자 styxx@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