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병원 선별진료소에서 치매 노인이 방문자들의 검체가 들어 있는 진단키트를 들고 가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병원 측의 관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수영구 한 종합병원에서 12일 오후 6시 32분께 "진단키트가 사라졌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해당 진단키트에는 이날 병원 선별진료소를 방문한 사람들에게서 채취한 검체가 들어있었다. 모두 32명분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해 강력팀을 현장에 급파, 폐쇄회로(CC)TV를 분석했다. 영상 속에는 70대 여성 A씨가 응급실 입구에 놓인 비닐봉지에 든 진단키트를 가져가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A씨 동선을 추적해 하루만인 13일 오전 6시 10분에 검거했다. A씨가 들고 간 진단키트도 모두 회수했다. 다행히 진단키트가 훼손되지 않아 검체가 밖으로 새지는 않았다.
A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현재 치매를 앓고 있으며, 최근에는 거리에서 물건을 집어와 집에 보관하는 증상도 잇따라 보였다. 이날도 A씨가 병원에 치료를 위해 방문한 것이 아니라 거리를 헤매다가 진단키트를 들고 온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70대 노인이 아무런 제제 없이 들고나올 정도로 검체가 든 키트에 대한 관리가 부실했다는 점이다. 만약 채취한 검체 중 코로나19 확진자 것이 포함됐다면 감염이 확산할 위험도 있었다.
해당 병원은 당일 오후 6시 선별 진료소가 문을 닫은 뒤 오후 9시 진단업체가 검체 키트를 수거하러 올 때까지 응급실 입구에 검체를 부실하게 놔둔 것으로 전해졌다.
수영구보건소는 이날 해당 병원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한 뒤 행정 조처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치매 할머니가 고의로 절도를 한 것으로 보이지 않아 형사처벌로는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예나 인턴기자 yen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