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군은 지리적으로 서울에서 가까운 곳임에도 관광객의 발길은 뜸한 편이다.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살기 좋은 고장이라지만 관광지라고 하면 농다리 외에는 언뜻 떠오르는 곳이 없다. 그래서 진천의 진면목을 살펴보기 위해 작정을 하고 길을 나섰다. 서울을 떠나는 아침결에는 하늘이 맑았는데 진천에 들어서자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 해가 보이지 않았다.
진천군에 진입해 처음 찾아본 곳은 보탑사다. 삼천리 방방곡곡 수많은 절 가운데 아주 특이한 사찰을 가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둘러볼 만한 절이다. 보탑사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사찰로 사료적 가치는 크지 않을지 모르지만 건축물의 아름다움으로는 우리나라 어느 절도 따라올 수 없다.
지난 1992년 비구니 스님인 지광·묘순·능현스님이 터를 잡은 곳에 대목 신영훈 씨 등이 불사를 시작해 1996년 8월 3층 목탑을 완공했고 이후 지장전·영산전·산신각 등을 건립해 2003년 불사를 완료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원형으로 삼아 만든 3층 목탑은 높이 42.71m로 상륜부(9.99m)까지 더하면 총 높이가 무려 52.7m에 달한다. 14층 아파트 높이다. 오로지 소나무만을 사용했고 단 한 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은 전통 방식을 따른 목조건물이다.
대웅전에는 사방불(동방 약사우리광불, 서방 아미타여래불, 남방 석가모니불, 북방 비로자나불)이 배치돼 있으며 법보전에는 윤장대(輪藏臺·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책장)를 두고 팔만대장경 번역본을 안치했다. 일반인들도 삼층 꼭대기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다. 잘 정비돼 있는 경내에서는 철마다 꽃들이 만발해 절을 찾는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단아한 보탑사의 아름다움도 이 지역을 찾을 이유가 되겠지만 진천군 하면 역시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의 ‘농다리’를 빼놓을 수 없다. 진천군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다. 축조 시기는 고려 초기로 알려졌으며 1976년 12월 21일 유형문화재 28호로 지정됐다.
세금천을 가로지르는 농다리는 모두 28칸으로 사력 암질의 붉은색 돌을 물고기 비늘 구조로 쌓아올려 교각을 만든 후 상판석을 얹어 놓은 형태다. 다리의 특징은 교각의 모양과 축조 방법에 있는데 돌의 뿌리가 서로 물리도록 쌓았으며 속을 채우거나 붙이는 석회물 보충 없이 하중을 이용한 건쌓기 방식으로 축조됐다. 교각의 폭은 4~6m로 일정한 모양을 갖추고 있으며 폭과 두께가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져 물의 저항을 최소화한다. 다리 규모는 총 연장 93.6m, 폭 3.6m, 교각 높이 1.2m 정도로 작지 않다.
이상임 문화관광해설사는 “석회 등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쌓은 것이지만 장마에도 유실되는 일이 없어 토목공학적 측면에서 귀중한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며 “원래 28칸이었던 교각이 유실돼 24칸만 남아 있다가 2008년 원형을 복구했다”고 설명했다.
진천군에 왔다면 배티성지도 들러볼 만하다. 돌배나무가 많은 고개라서 이치(梨峙)라고 불리다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라 불리게 됐는데 이 근처에 천주교 박해를 피해 비밀 교우촌이 형성됐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37년 5월 나모방 베드로 신부의 방문과 미사 집전으로 배티 공소가 설정됐으며 이후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를 겪으면서 일대의 교우촌은 배티와 삼박골·정삼이골·용진골·절골·동골·발래기·새울·지장골 등 열다섯 곳이 넘어 한국의 카타콤바(비밀 교우촌)로 불리게 됐다. 올해는 배티성지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포교한 최양업(1821~1861년)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순례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글·사진(진천)=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