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권 경쟁에 ‘7080세대’ 돌풍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김웅(70년생) 의원을 시작으로 김은혜(71년생) 의원과 이준석(85년생) 전 최고위원도 도전장을 내밀고 ‘젊은피’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최고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배현진(83년생)의원에 이어 조수진(72년생)의원도 곧 출마를 선언할 예정입니다. 원외 인사로는 원영섭(78년생)전 조직부총장, 조대원(70년생) 전 경기 고양정 당협위원장이 4명을 선출하는 최고위원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합니다. 전체 최고위원 출마자 9명 가운데 7080세대가 4명이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1명을 선출하는 청년 최고위원에도 봅슬레이 스켈레톤 국가대표팀 감독 출신 이용(78년생) 의원과 김용태(90년생)경기 광명을 당협위원장, 홍종기(78년생)부대변인, 강태린(86년생) 의왕·과천 당협부위원장까지 현역 의원 1명과 3명의 원외가 경쟁을 하는 구도입니다. 김웅·김은혜 의원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 가운데 당대표가 나오고 최고위원 역시 상당수 선전할 경우 보수정당의 ‘세대교체’를 선언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영남당’vs‘수도권’보다 생산적인 ‘신진vs중진’ 경쟁
당권 경쟁 초반 ‘영남당’vs‘수도권’ 프레임과 달리 최근의 ‘신진vs중진’ 경쟁은 국민의힘이 건강한 보수로 거듭날 수 있다는 기대를 받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품격과 실력을 갖춘 보수정당의 정립 필요성은 두 말 하면 잔소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7080세대 돌풍은 반가운 일입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더불어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부럽다”까지 했습니다. 4·7재보선 참패 이후 이른바 ‘초선5적’이라 지칭된 의원들이 바른말을 했다가 강성당원들로부터 ‘문자폭탄’폭격을 받은터라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을 듯합니다. 물론 민주당도 지난 5·2전당대회에서 김용민(76년생) 의원과 강병원(71년생)의원이 각각 1, 2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됐지만 선거 패배 이후 초선을 중심으로 특히 2030세대 의원들이 당 쇄신 목소리를 높였다가 의미있는 도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당시 최고위원뿐만 아니라 당대표 선거 출마까지도 고민하던 기류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점은 일부 강성당원들의 항의보다는 스스로의 자신감 결여였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한 의원은 “전체적으로 ‘가만히 있어라. 일찍 지도부가 된 뒤 다음 수순을 밟을 수 있겠느냐’는 식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뭉쳐야 뜬다”…69년 김영삼 이어 김대중·이철승 가세 ‘40대기수론’ 형성
“뭉쳐야 산다”고 했던가요. 7080세대 의원이 지도부에 혼자서 진출하려한다던가 홀로 대선에 나간다해도 세대교체의 명분과 세를 확보하기는 어렵습니다.
68세대의 대표주자격인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기자와 만나 “386이라는 정치인은 우상호 혼자가 아니라 임종석, 이인영 등 그룹이 형성돼서 가능하고 규정될 수 있었다”며 “7080세대 역시 함께 해야 시대정신과 담론, 의제를 만들어 세대를 대표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1969년 11월 8일 만 41살의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김영삼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40대 기수론에 당시 김대중(45세)·이철승(48세) 등이 연달아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출마를 선언했다는 겁니다.
당시 유진산 신민당 총재가 “정치적 미성년”이나 “구상유취”라며 견제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언론도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출마선언에 대해 언론은 “유진산·정일형·이재형 부총재나 고흥문 사무총장과도 사전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당 원로급과의 충돌을 각오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는데요. 당시 김영삼에 이어 김대중, 이철승이 가세하면서 40대 기수론이 대세가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말그대로 ‘뭉쳐야 산다는 걸 넘어 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7080세대 당권주자 장점부각후 극적 단일화 전략 유효
이런 점에서 국민의힘의 당권경쟁은 더욱 유의미합니다. 7080세대 정치인들이 각자의 장점을 부각하면서 세력화에 나선 뒤 막판 극적 단일화를 이뤄낸다면 예상 밖의 파괴력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데는 그만큼 ‘뭉칠’ 가능성을 주목해서입니다.
김은혜 의원이 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이번 당대표 출마는) 새로운 물결을 거세게 일으키는 데 방점이 있고 단일화 자체에도 닫혀 있지 않다.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눈여겨 볼만 합니다. 김웅 의원도 "변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김은혜 후보나 저나 이 전 최고위원이나 자기희생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대세를 형성한 뒤 경쟁력 있는 후보로의 일사분란한 단일대오를 예고하는 셈입니다.
김종인 “70년대생 경제 철저하게 공부한 사람”…세대교체 ‘씨앗’
국민의힘의 7080세대의 파괴력은 이번 당권 경쟁으로 끝날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여야 모두 당권경쟁의 이면에는 내년 대선경쟁이 전제돼 있습니다.
현재 국민의힘은 이렇다할 대선후보가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지속적으로 야권 지지율 1위를 기록중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상황입니다. 특히 ‘중진’후보들의 윤석열 영입 경쟁은 더욱 치열합니다. 반면, 7080세대 후보들은 ‘자강론’에 좀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들의 결기가 국민의힘 ‘40대 기수론’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40대 기수론에 불을 지핀 게 불과 1년전입니다. 1년전 만해도 7080세대의 지도부 진출은 국민의힘 내부에서 조차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한순간에 바뀌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1970년대생 가운데 경제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한 사람이 대선 후보로 나서는 게 좋다”고 하면서 40대 기수론을 띄웠습니다. 김 전 위원장이 일찌감치 40대 기수론을 내놓은 것은 ‘새로운 인물’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누구보다 빨리 읽어서였습니다.
이처럼 이번 국민의힘 7080세대의 당권경쟁은 김 전 위원장이 심어놓은 ‘씨앗’에 가깝습니다. 당권 경쟁에 나선 인물이 대선후보가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국민의힘에 세대교체의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됐다는 말입니다. 국민의힘의 대선후보 확정은 민주당보다 3개월 가량이나 여유 있는 오는 11월입니다. 또 다른 ‘돌풍’이 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국민의힘은 가지고 있습니다. ‘40대로 경제를 철저하게 공부한 사람’ 누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