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수집 얘기를 하면 얼마짜리 작품인지 재화적 가치부터 따지는데 ‘이건희 컬렉션’도 비싼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수집의 철학이 귀중합니다. 미국 보스턴에 갔을 때 개인 컬렉터가 자신의 수집품과 집을 그대로 남겨 미술관으로 만든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내가 남은 그림 팔아서 돈을 벌 것도 아니고 비싼 작품이 아니어도 의미가 크니 남겨놓고 가고 싶다고 가족에게 제안했는데 다행히 모두가 동의해줬습니다.”
김용원 도서출판 삶과 꿈 대표는 갤러리처럼 수집품을 전시해놓은 자신의 종로구 평창동 집에 ‘운심석면(雲心石面)’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애정 깃든 이곳을 미술관으로 조성하기로 지난해 말 종로구와 협약을 체결했다. 종로구는 평창동과 부암동·구기동 등지의 문화예술인과 가나문화재단이 합심한 ‘자문 밖 프로젝트’에 공감해 김창열·윤명로 등의 자택을 미술관으로 건립하기로 했는데 김 대표와 큰딸 김진영 연세대 교수도 ‘운심석면’의 기증을 약속했다. 전시된 작품들도 함께 기증한 것이라 개인 수집품의 사회 환원으로는 특별한 선례를 남기게 됐다.
김 대표는 “우리 생활용품을 ‘민예품’으로 칭한 일본의 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자신이 살던 집과 수집품을 민예관으로 남기고 떠났다”면서 “가드너 뮤지엄이나 민예관이나 큰 집은 아니지만 하나의 역사로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집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수집품의 사회 환원과 공공화 작업에 착수한 김 대표는 지난 4월부터 컬렉션을 주제로 한 소규모 문화 강좌도 시작했다.
“수집 작품을 보여만 주는 게 아니라 그림 향유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는 문화 체험의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나의 수집 철학을 얘기하면서 ‘미술 애호의 문화’를 양성하는 대안적 학교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내가 살던 옆집이 비어 있는데 러시아문화관으로 문학과 음악을 공유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어쨌든 상속하지 않고 이 소중한 미술품을 공공재로 환원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술관으로 운영될 경우 작품 연구와 공간 관리를 전담할 전문 학예사가 필요한데 지자체 운영 여건이 이를 보장할 수 있을지는 과제다.
‘구름의 마음 돌의 얼굴’이라는 뜻의 ‘운심석면’은 서예가 검여 유희강의 글귀에서 빌려왔다. 김 대표의 집 거실에 걸려 있는 글씨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진행한 2층 야외 정원 흰 벽에는 작가 김원숙의 ‘떠다니는 달(Floating Moon)’이 설치돼 있는데 둥근 달을 안고 가는 쪽배 아래 물결이 구름처럼 흐드러져 넉넉한 ‘구름의 마음’처럼 보인다. 뒤쪽 야산에는 제주의 석공 명장 장공익에게서 구해온 돌하르방 여럿이 어깨를 맞대고 섰는데 그 ‘돌의 얼굴’ 또한 푸근하고 정감이 넘친다. 예술을 통한 베풂의 정신이 김용원의 철학이고 ‘운심석면’ 그 자체임을 나직이 속삭인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