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장유유서(長幼有序)' 발언으로 정치권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30대 총리가 국가를 훌륭하게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구시대적 관념을 꺼내들었다는 지적이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25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장유유서는 정치에서 쓰는 말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동으로 승진하고 호봉이 오르는 연공급제 회사처럼 정치가 움직인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일일 것"이라며 "류호정 의원에게 ‘야’ 소리지르고 가슴팍을 툭툭 밀치던 민주당 의원들을 떠올려보면, 나이가 권력인 줄 아는 정치인들이 기성 정치판에는 그득그득한 것 같다"고 했다.
강 대표는 "장유유서는 정치에서 뿐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제는 지양되어야 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른과 아이에게 순서가 있던 시대는 지금과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나이와 세대를 넘어 동등한 권리와 상호 존중이 필요한 시대"라고 덧붙였다.
앞서 정 전 총리는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세대 대결 구도로 전개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대해 얘기하던 중 "장유유서, 이런 문화도 있고 그런 변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지만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의 당대표 선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륜이 없이 이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평가절하했다. 정 전 총리는 "옛날에 영국에 밀리밴드라고 하는 39세짜리 당대표가 나온 적이 있다"며 "그런데 아마 그 당이 정권을 잡는 데 실패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즉각 반박했다. 그는 SNS에 "제가 말하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시험 과목에서 '장유유서'를 빼자는 것"이라며 "그게 시험과목에 들어있으면 젊은 세대를 배제하고 시작한다"고 비판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초선 여성후보 김은혜 의원이 1등을 했으면 남편과 아내는 직분이 다르다는 ‘부부유별’을 들고 나왔을 판”이라며 비판 행렬에 가담했다. 그는 “21세기 4차산업혁명 시대, 민주주의 대한민국 선거에 기원전 2세기 중국 한나라에서 정립된 삼강오륜을 들이미는 민주당은 제정신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의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40대 기수론'의 정당인 우리 민주당이 어쩌다가 장유유서를 말하는 정당이 되었나"라고 한탄했다. 박 의원은 "젊은 사람의 도전과 새바람을 독려해야 할 시점에 장유유서, 경륜이라 말로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도전에 머뭇거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이어 "민주당은 지금 '장유유서'와 '경륜'보다 '환골탈태'와 '도전'이라는 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에 ‘장유유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칫 우리 민주당이 청년들에게 닫혀있는 ‘꼰대 정당’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적으로 '젊은 정치 지도자'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상황에서 '장유유서'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31세이던 2017년 국민당 대표 자격으로 총리를 맡아 2년 간 집권했고, 지난해 1월 다시 선출돼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36세인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도 훌륭하게 국정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지난해 6월 핀란드 일간지 '헬싱긴 시노마트'에 따르면 시민의 71%가 "현 정부가 임무를 잘 수행한다"고 응답했다.
정 전 총리는 이후 논란이 일자 SNS를 통해 “젊은 후보가 정당 대표로 주목을 받는 것은 큰 변화이고, 그런 변화는 긍정적이며 정당 내에 잔존하는 장유유서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