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부터 수십 년간 운영해온 가게를 접는다는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적자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후련함이 더 크네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앞에 자리한 한컴문화사 사장 이 모(62) 씨는 26년간 운영해온 가게를 닫기로 결심했다. 30대부터 한자리에서 문화사를 운영하며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그였지만 코로나19로 수입이 급감하자 결국 아쉬움을 뒤로한 채 폐업을 결정했다.
강의 자료 출력부터 교재 복사와 제본 등을 담당하며 대학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해온 문화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19로 대학 수업은 물론 교내 연구회마저 비대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문화사를 찾는 학생들의 발길이 뚝 끊긴 탓이다. 여기에 무인 프린팅 업소까지 성행하면서 대학가를 떠나는 문화사들이 점차 늘고 있는 분위기다.
대학가에서 강의 자료 복사나 제본을 해주는 인쇄업은 태블릿PC 등 학생들의 전자 기기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사양길을 걷고 있다. 이 씨는 “주로 강의 교재나 보고서를 대량으로 복사·제본해 수익을 올렸는데 태블릿PC를 사용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늘면서 수익도 계속 줄기 시작했다”며 “대학가 주변 인쇄업도 10년 전부터 내리막길을 걷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종업원이 없는 무인 프린팅 가게도 대학가 주변에 속속 생겨나며 기존 인쇄 업체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문화사 6곳이 줄지어 있는 고려대 정경대 후문 앞에도 무인 프린팅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지난해부터 들이닥친 코로나19는 대학가 인쇄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코로나19로 대학 수업 대부분이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진행되자 문화사를 찾는 학생들이 사라진 것이다.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쉬는 시간마다 문화사는 강의 자료를 인쇄하려는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정식 출판되지 않은 교재를 쓰는 교수들은 문화사에 제본을 맡겨 학생들이 구매하도록 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이런 풍경은 모두 사라졌다.
학내 세미나나 연구회 자료집 출력도 문화사들의 또 다른 수입원이었지만 이마저도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수익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 씨는 “2019년에 비해 지난해 수입은 3분의 1 토막이 났다”며 “매번 밥을 사 먹는 것도 부담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손님이 하나도 없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라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며 “주변 가게는 지난해에만 4,000만 원의 적자를 봤다고 할 정도로 다들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인근의 또 다른 문화사 업주는 “버티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어 모두 힘들어도 그저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 생활 동안 많은 추억을 쌓았던 졸업생과 재학생들도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재학생 김 모(26) 씨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강의 자료와 취업 준비에 필요한 자료들을 출력하며 꿈을 키워오던 곳이 문화사였다”면서 “문화사들이 사라지면 대학 생활의 추억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뿐”이라고 전했다.
/심기문 기자 do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