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을 계기로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한다면 기증의 뜻을 가장 잘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삼성가에서 기증한 1,00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근대미술품 2,000여 점을 토대로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한다면 대한민국의 사라진 근대사를 복원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 믿습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이건희컬렉션 기반으로 국립근대미술관 시동
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 유족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할 미술관 신설이 검토되는 가운데 미술계가 27일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발족식을 열고 근대미술관 건립을 촉구했다. 미술계 인사 약 400명이 참여하는 모임이다. 이들은 출범 선언문에서 “오늘의 대한민국 정체성 형성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시기인 근대의 정신과 물질을 상징하는 국립근대미술관의 존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국립현대미술관의 근대기 소장 작품과 이건희 기증품의 근대기 해당 작품을 합해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한다면 오랫동안 그늘 속에 버려져 왔던 근대의 영혼과 감성, 그리고 고통을 극복해 온 근대의 역사가 장엄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시 우뚝 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발족식에 참석한 미술사학자 최열은 “선진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고대·중세·근대·현대의 4관 체제가 보통인데 우리는 고대를 다루는 박물관과 현대미술관 뿐인 2관 체제로 근대 실종의 기형적 상태”라며 “최근 국립미술관이 세분화하는 추세임에도 여전히 후진적 측면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와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미술관 부지로 최종 제안하고 세부 건축방안도 공개했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을 설계한 홍재승 건축가가 이날 세미나에서 제시한 안에 따르면 정부서울청사의 경우 19층 건물의 상부 10개 층을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층고 확보를 위해 2개 층을 1개 층으로 합쳐 미술관으로 사용할 수 있다. 송현동 부지는 지난 1997년 삼성생명이 미술관 건립을 위해 매입했다가 2008년 대한항공에 소유권을 넘긴 곳으로, 현재는 LH공사에 매각돼 서울시 문화역사공원부지가 예정된 곳이다. 서울시가 미술관 건립을 위해 송현동 부지 사용권을 제공할 경우 5,000평 규모 면세점을 지하에 조성하고 20년 사용권 분양으로 건물을 짓는 기부체납 방식을 택해 국가예산 투입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제안이다. 지하 1만 2,000평은 버스 200대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으로 만들어 서울 도심의 관광버스 주차난을 해소하겠다고도 제시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경복궁 인근의 각종 박물관·미술관 집적효과에 더해 인사동과 이어지며 남산·명동·청계천 등지로 연결될 수 있다”면서 “자체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미술관이자 근대 문화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이건희미술관’ 과열 경쟁
한편 삼성가에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기증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의 전시관 건립을 언급한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치열한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SNS를 통해 ‘이건희미술관’을 유치하고 싶다고 밝힌 후, 미술관 유치 계획의 일환으로 오페라하우스를 건립 중인 부산북항에 이건희미술관이 들어설 수 있도록 정부가 ‘공모’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대구, 행정수도의 상징성을 주장하는 세종시를 비롯해 서울 용산구, 경기도 용인·수원·평택·오산과 경남 의령·진주·창원, 경북 경주, 전남 여수 등도 유치전에 가세했다. 최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신설할 미술관을 수도권에 건립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문화 균형발전을 주장하며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히 대구와 창원 등지의 반대가 극심하다. 진주시 등 일부 지자체는 구체적인 부지와 운영 방안 등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각계 의견을 수렴 중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음 달 ‘이건희 컬렉션’과 관련한 미술관 신설을 위한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