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젊은 학자의 집념이 발굴해낸 '直立人'…인류 진화 퍼즐 완성했다

[최수문의 중국문화유산이야기] <15> ‘베이징 원인’의 저우커우뎬 유적

1929년 50만년전 추정 두개골 발견

모호하던 '호모 에렉투스' 존재 증명

학계선 '베이징 원인'으로 이름 붙여

현재도 발굴…인류 화석 300점 나와

베이징, 세계 고고학 핵심 지역 부상

50만 년 전 베이징 원인의 두개골 화석이 발견된 저우커우뎬유적지의 '원인동' 모습. 동서 길이 140m, 남북 2~40m이고 깊이는 40m로 거대한 규모다. /최수문기자50만 년 전 베이징 원인의 두개골 화석이 발견된 저우커우뎬유적지의 '원인동' 모습. 동서 길이 140m, 남북 2~40m이고 깊이는 40m로 거대한 규모다. /최수문기자




삭풍이 몰아치던 지난 1929년 12월 2일 중국 베이징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50㎞가량 떨어진 저우커우뎬(周口店) 지역. 동굴 속에서 쭈그리고 앉아 땅을 파던 26세의 젊은 고고학자 페이원중(裵文中)의 손이 딱딱한 물체에 닿았다. 절반 정도가 단단한 모래흙에 묻혀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두개골이었다. 페이원중은 “내가 사람을 찾았다”고 소리쳤다. 두개골을 지렛대로 들어내는 과정에서 밑바닥 일부가 떨어졌다. 50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직립인(直立人·호모 에렉투스)이 발견된 순간이었다.



페이원중(1904~1982)은 1927년 베이징대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저우커우뎬 발굴단에 조사원으로 참여했다. 1929년쯤에는 발굴 성과가 뜸하고, 겨울이 닥쳐오면서 대부분의 발굴단원들이 철수하는 상황이었다. 페이원중이 강행을 주장하자 “그럼 네가 한번 해보라”며 발굴단 책임자로 깜짝 승진됐다. 그리고 이것이 인류사를 바꿀 대발견으로 이어진 것이다.

저우커우뎬에서 처음 구석기 유적이 발굴된 것은 1921년이었다. 오스트리아 생물학자 오토 즈단스키가 이빨 화석 하나를 발견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이후 진행된 대대적인 발굴 결과, 마침내 1929년 거의 완전한 형태의 두개골이 나왔다. 당시 모호하던 호모 에렉투스의 존재가 증명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베이징 원인(猿人·원숭이와 인간의 중간 단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저우커우뎬유적지의 ‘원인동’ 동굴을 위쪽에서 바라본 모습. /최수문기자저우커우뎬유적지의 ‘원인동’ 동굴을 위쪽에서 바라본 모습. /최수문기자


현재까지 계속된 발굴로 저우커우뎬 지역에서는 70만 년 전에서 20만 년 전까지의 호모 에렉투스와 함께 20만~10만 년 전 초기 호모 사피엔스, 3만~1만 년 전 등의 화석 유물이 나왔다. 지금까지 27곳이 조사됐는데 인류 화석 300여 점과 석기 10만여 점, 수백 종의 동물 화석이 발굴됐다.

베이징 원인이 중요한 것은 그 시대적 의미 때문이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하면 원숭이-현생 인류는 세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가 200만 년 전 원숭이에 보다 가까웠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 세 번째가 20만~1만 년 전에 존재한 현생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언스다. 첫 번째와 세 번째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호모 에렉투스 단계다. 베이징 원인의 발견으로 인류 진화의 퍼즐이 완성된 것이다. 세계 고고학계는 깜짝 놀랐고 베이징 지역이 세계 고고학의 핵심 연결 고리로 부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페이원중이 발견한, 가장 중요한 호모 에렉투스 두개골 유물은 현재 볼 수가 없다. 발굴 이후 베이징에 보관 중이었는데 중일전쟁 과정에서 일본군의 약탈을 피해 미국으로 운반하려다 도중에 사라졌고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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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커우뎬유적지 입구에 복원된 '베이징 원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최수문기자저우커우뎬유적지 입구에 복원된 '베이징 원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최수문기자


베이징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 버스는 베이징 서산의 끄트머리에 도착했다. 베이징을 서쪽으로 감싸고 있는 타이항산의 끝 부분이다. 입구에는 ‘저우커우뎬국가고고유지공원(周口店國家考古遺址公園)’이라는 큰 안내판이 눈에 뛴다. 현재의 행정구역명은 베이징시 팡산구 저우커우뎬진이다.

저우커우뎬공원은 한눈에 봐도 인류가 거주했을 만한 공간이다. 옆으로는 실개천이 흐르는데 베이징에서는 개천은 귀한 존재다. 뒤로는 산이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고 있다. 여기에 인류가 살았을 때는 베이징이 보다 살기 좋았을 듯하다. 이후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생활 조건이 악화된 것이 현재의 상태다.

공원 입구에는 페이원중이 발견한 두개골을 기초로 해서 만든 베이징 원인의 거대한 흉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기념사진에 최적인 배경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산 하나 전체가 유적지 공원으로 돼 있다. 90년간의 발굴이 진행된 각 동굴들을 산책길로 연결했다.

핵심은 원인동(猿人洞)이라 불리는 동굴이다. 바로 페이원중이 50만 년 전의 두개골을 발견한 곳이다. 비바람을 막기 위해 지금은 철판으로 덮어놓아 밖에서 보면 우주 기지를 연상시킨다. 동서 길이는 140m, 남북은 2~40m이고 깊이는 40m인 거대한 규모다. 일부는 자연 동굴이고, 일부는 발굴 과정에서 흙을 파내 이런 거대한 구멍이 생긴 것이다. 당시 삽과 곡괭이만으로 이런 구덩이를 팠을 어려움이 느껴진다. 한쪽 구석에는 ‘두개골’이 발견된 위치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그 외에도 공원에는 10여 개의 발굴 지점이 있다. 최근의 유적인 산정동(山頂洞)이라는 곳에서는 3만~1만 년 전의 인류 화석, 동식물의 화석 등이 나왔다. 제4 지점에서는 초기 호모 사피엔스 화석이 발견됐다.

여기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공원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저우커우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베이징 원인의 전신상이 전시돼 있다. 전시실에서는 페이원중이 발견한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 모형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1941년 두개골이 사라지기 직전 연구원들이 만일을 대비해서 모형을 제작했는데 원본은 없어지고 이 모형만 남아 있는 것이다. 시대별로 사람과 동물의 화석이 풍부하게 전시돼 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베이징=최수문특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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