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국정농담] 美로 쓱 기운 文 '北승부수', 중국은 또 보복할까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韓, 한미정상회담으로 '줄타기 외교' 사실상 탈피

반도체 등 44조원 투자로 北정책·軍백신 등 얻어

文, 바이든 요청에 '中격퇴' 용사 앞 즉석 무릎 사진

국내에선 '긍정평가' 多...中은 "불장난 말라" 반발

靑 "사드 같은 분위기 아냐", 鄭 "양안 특수성 인지"

"코로나 안정시 習방한 추진"에도 中압박 경계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조 바이든(오른쪽부터) 미국 대통령,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조 바이든(오른쪽부터) 미국 대통령,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중 갈등 속 우리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을 대폭 강화하는 노선을 택했다. 반도체·배터리 등 44조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를 발판으로 한반도 비핵화 공조, 백신 파트너십 결성, 한미 미사일지침(RMG) 종료 등의 성과를 얻어오면서 “최고의 회담이었다”고 평가한 여권은 물론 야권에서도 나쁘지 않은 회담 성과였다는 평가를 얻었다. 특히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며 그간 위태롭게 이어왔던 미중 균형 외교가 이번 회담으로 사실상 끝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각종 공급망에 확실히 편입될 의지를 보이면서 서방 세계의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켰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계기로 중국이 과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때와 같은 경제 보복에 나설 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정부는 중국 보복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으나, 중국이 사드 당시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압박에 나설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진단이다. 북한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발신한 대화 메시지에 호응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비 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비 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줄타기 외교’ 벗고 ‘동맹강화’로 대북 승부수 던진 文정부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 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도출했다. 양국은 정상회담 이후 “반도체, 친환경 전기자동차 배터리, 의약품 등 우선순위 부문을 포함해 우리 공급망 내 회복력 향상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중국 견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국이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핵심 품목을 중심으로 한국과 손을 맞잡은 것이다.

한미는 또 “각국의 강점을 발휘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입증된 백신 생산 확대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며 백신 파트너십도 본격화했다. 미국은 이와 별도로 한미 동맹 차원에서 주한미군과 접촉하는 한국군 55만 명에 대한 백신 직접 지원도 약속했다. 주한미군을 명분으로 내세워 ‘부자 나라에 왜 백신을 지원하느냐’는 미국 내 반발 여론을 피한 전략적 결정이었다.

두 정상은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도 공식화했다. 한국의 탄도미사일 최대 사거리와 탄도 중량에 대한 제한이 42년만에 풀린 것이다. 백신과 미사일 관련 협상 성과 모두 동맹국인 한국의 군사력을 확대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미국의 안보적 전략과 맞닿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공동 성명문에서 중국과 관련해 무엇보다 눈에 띈 부분은 남중국해·대만해협·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력체) 부분이었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은 미중 간 군사적 충돌 발생 우려가 높은 지역이다. 양국은 쿼드와 관련해서도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합의했다.

한국 정부는 대신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에 문 대통령의 입장을 대폭 반영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절 이뤄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을 바이든 정부가 수용하는 성과를 끌어냈다. 북한 김정은 정권과의 남북·북미 대화 불씨를 사실상 다시 살린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직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한미 양국은 소통하며 대화·외교를 통한 대북 접근법을 모색할 것”이라며 “북한의 긍정적인 호응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정상회담에 앞서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은 새로운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한 단면이었다. 문 대통령은 예고치 않은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으로 갑작스럽게, 랠프 퍼킷 주니어 예비역 대령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기념촬영을 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문 대통령의 기획이라면 대단한 책략가”라고 평가했지만,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2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사진을 찍자는 것은 즉석에서 받았던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퍼킷 대령은 1950년 11월 청천강 일대 205고지에서 51명의 부대원과 9명의 한국군(카투사)을 지휘해 ‘중공군’ 수백 명을 물리친 공로를 인정받은 인물이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연합뉴스=중국 외교부 자료사진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연합뉴스=중국 외교부 자료사진


국내에선 전 지역·연령 ‘긍정’…中은 “불장난 말라” 즉각 반발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국내 여론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방미 때보다는 확실히 문 대통령이 더 큰 환대를 받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실제로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24~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2,004명을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은 56.3%로 부정적으로 평가한 답변 31.5%를 크게 웃돌았다. 특히 긍정 여론은 모든 지역과 연령에 걸쳐 부정 여론을 앞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바이든 대통령에 호감이 간다는 응답도 62.1%에 이르렀다. ‘트럼프와 비슷하다’는 반응은 21.6%, ‘바이든 대통령이 더 비호감이다’라는 답변은 9.8%에 그쳤다.

한국갤럽이 지난 25∼27일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지난주보다 3%포인트나 올랐다. 긍정 평가 이유로는 ‘외교·국제 관계’가 30%로 치솟았다. 지난해 2월부터 늘 긍정 평가 이유 1위를 기록했던 ‘코로나19 대처’는 무려 15개월만에 처음으로 2위가 됐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52%로, 지난주보다 6%포인트 줄었다.



반면 중국은 대만해협까지 거론한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을 두고 즉각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4일 정례브리핑에서 “내정 간섭을 용납할 수 없다”며 “불장난을 자제하라”고 반발했다. 중국 글로벌타임스은 27일 “중국은 한국이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언급한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한국은 한·중 관계의 역행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26일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외전’에 출연해 한미 성명에 ‘중국’이라는 표현이 빠진 것을 두고 “(한국이) 많이 노력한다고 평가한다”면서도 “중국 단어가 나오지 않았지만 (중국을) 겨냥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관련 내용에 포함된 데 대해서는 “아예 없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다만 이는 지난 4월 미일정상회담 공동성명이 나왔을 때보다는 온건한 대응이었다. 당시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핵심 이익을 건드려선 안 된다”며 “중국의 내정을 거칠게 간섭하고 국제관계 기본 준칙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크게 반발한 바 있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 /연합뉴스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 /연합뉴스


靑 “사드 때 같은 분위기 아냐”…정의용 “양안 특수성 충분히 인지”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중국 측 반응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일단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데 주력하는 모양새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물밑 외교로 중국과의 갈등을 피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중국이 한미 공조 강화를 경계하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고 “중국은 지리적으로도 인접해 있고 무역·해외투자 면에서 매우 중요한 경제협력 대상국”이라며 “한국은 중국과 호혜적인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드 배치 갈등 때처럼 경제 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본다”며 “그런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너무 앞서나간 예측”이라고 일축했다. 이 실장은 “한국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기후변화 등 글로벌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개방성, 다자주의 원칙,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역시 한미정상회담 결과로 중국 측이 반발할 것이라는 우려에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은 같은 날 진행된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 3개 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중국 (인권) 문제에 관해 국제사회에서 여러 논의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양안 관계를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 장관은 “한중 간의 특수 관계에 비춰 우리 정부는 중국 내부 문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계속 자제해왔다”며 “이런 우리 정부 입장이 공동성명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장관은 특히 한미 공동성명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명시된 점을 두고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내용만 공동성명에 포함한 것”이라며 “우리 정부는 양안 관계의 특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 외교부가 전날 대만 해협 문제를 겨냥해 “불장난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 데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정 장관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중국 인권은 빠지고 북한 인권만 포함된 배경에 대해 “우리 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 직접적인 당사자이기 때문”이라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평가보다 북한 내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는 긍정적인 내용의 문안을 포함했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


文 “코로나 안정 땐 習 방한 추진”…中 압박 가능성 배제 못해

문 대통령도 한미정상회담 직후부터 중국을 납득시키기 위해 데 노력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여영국 정의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오찬 간담회를 갖고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중국과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시기에 관해서도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쿼드와 관련해서는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문 대통령은 여 대표가 오는 8월 한미연합훈련 취소·연기를 제안하자 “코로나19로 대규모 군사훈련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답하기도 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발언으로 해석되지만, 미국이 우리 군 장병 55만명에게 백신 지원을 결정한 속내와는 배치될 수도 있는 생각이었다. 문 대통령은 또 송 대표가 전시작전권 회수를 조건부가 아닌 기한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자 “조건부 회수가 잘 성숙되도록 점검하고 대화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중국이 한미동맹과 반중 전선 강화를 두고 한국에 어떤 대응을 할 지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사드 배치로 시작된 한한령(限韓令)이 아직도 해제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중국이 그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내놓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경제 교류에 제약이 발생해 추가 보복 카드 자체를 찾기가 마땅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우리 정부가 물밑 교섭을 통해 중국 측으로부터 한미동맹의 당위성을 이해받을 여지도 있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중국이 아무 대응도 없이 한국의 대미 외교 행보를 지켜만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적어도 우리 정부가 북한 대화 협조를 이유로 미국 측에 더 급격히 기우는 상황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회유·설득·압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그간 한국을 한미일 삼각 공조의 가장 약한 고리 취급을 했다는 점에서다. 중국이 경제 문제뿐 아니라 우리 정부의 최대 관심사인 북한 문제에 어떻게 관여할지도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한편 30일부터 이틀간 개최하는 ‘2021 P4G 서울 정상회의’에는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모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와 리커창 중국 총리가 참여한다. 문 대통령이 앞서 21일 한미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께서 다음 주 P4G 서울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하시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한 바 있지만, 이는 원칙적 입장 표명이었다는 게 청와대 측 해명이었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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