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가 전무후무한 악당 사냥을 끝냈다.
29일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극본 이지현/연출 박준우)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모범택시’ 마지막회 시청률은 전국 15.3%(닐슨코리아 기준), 순간 최고 시청률 18%를 기록, 주간 미니시리즈 1위를 수성했다.이는 SBS 역대 금토드라마 중 ‘펜트하우스2’, ‘열혈사제’, ‘스토브리그’를 이어 4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김도기(이제훈)가 자신의 모친을 살해한 진범 이자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오철영(양동탁)에게 복수하고자 그의 아들을 뒷조사했다. 그 결과 아들은 오철영이 수감된 교도소 교도관이며 두 사람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후 김도기는 아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그의 아버지를 찾아주겠다고 접근했지만 중증 치매 환자 모친을 보살피는 등 고달픈 삶을 사는 한동찬(류성록)을 보고 복수를 포기했다. 하지만 신의 장난일까. 오철영의 추악한 광기가 결국 자신의 아들을 처절하게 무너트렸다. 오철영이 이감 도중 한동찬에게 폭행을 가해 전치 4주 부상을 입혔고 그사이 그의 치매 환자 아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사망하게 된 것.
이와 함께 강하나(이솜)는 증거 불충분의 이유로 김도기의 죄를 눈감아줬고, 무지개 다크히어로즈는 다음을 기약하며 공식 해체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오철영의 재심과 함께 백성미(차지연)와 구석태(이호철), 구영태(이호철) 쌍둥이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렸다. 자신이 아들과 아내에게 한 행위를 알게 된 오철영은 20년간 자신을 대신해 옥살이한 피해자 김철진(전석찬)에게 사죄했고 백성미는 징역 20년, 구석태와 구영태는 무기징역에 처하며 시원한 사이다를 안겼다.
그런 가운데 방송 말미 또다시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해 눈길을 끌었다. 이후 각자의 삶을 살았던 무지개 다크히어로즈가 다시 모인 데 이어 검사 강하나까지 합류, 무지개 다크히어로즈의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해 시청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에 마지막까지 안전 운행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모범택시’가 남긴 것을 짚어봤다.
‘모범택시’의 탄생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전화 한 통이면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대행해주는 택시회사’라는 독특한 설정은 단번에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법 테두리 밖에서 악당들을 사냥하며 선보인 무지개 다크히어로즈와 택시기사 김도기의 통쾌한 응징과 복수 플레이는 시청자들에게 사이다 이상의 대리만족을 안겼다. 특히 극 초반 케이퍼물의 짜릿한 재미를 선사했다면 극 후반에는 장르물의 심장 쫄깃한 스릴을 안기며 우리 사회가 기다려온 ‘K-다크히어로의 진수’를 선보였다. 비록 무지개 다크히어로즈의 악당 사냥은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범죄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모습은 모두의 바람을 대신 이뤄준 결말이었다.
‘모범택시’는 현대판 노예, 학교 폭력, 불법 유출 동영상, 보이스피싱 등 현실에서 제대로 처벌되지 않아 많은 이의 가슴에 아쉬움을 남긴 범죄들을 재조명하고 이를 모티브로 구성한 에피소드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극했다. 특히 “사적 복수는 과연 옳은가?”라는 질문에 사적 복수로 범인을 잡는다 해도 결국 또 다른 피해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우린 범죄로 가족을 잃었어.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아나? 분노의 불꽃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야”라는 장성철의 대사를 통해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조명했다.
또 매회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지는 엔딩 메시지가 묵직한 여운을 안기며 극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학폭 에피소드에 나온 ‘어리다고 죄의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누가 돌을 던졌건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니까’(3회) 메시지는 미성년 범죄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내면서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피해자들을 향한 진심 어린 응원이었다. 또한 회사 갑질 폭행 에피소드에 나온 ‘행동은 대나무처럼 하시더라도 마음은 풀처럼 다시 일어나십시오. 버티세요. 부러지지 마세요’(5회), ‘법원권근. 법은 멀고 권력은 가깝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6회) 문구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했다. 이에 ‘모범택시’는 일회성으로 소모되는 재미가 아닌 드라마의 시작부터 끝까지 공들여 담아낸 메시지로 단순 범죄 액션물과 차별화된 행보를 걸었다.
‘모범택시’의 중심에 이제훈이 있었을 만큼 장르를 불문한 연기력과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보유한 이제훈이 탄생시킨 택시히어로 김도기는 역시 달랐다. 이제훈은 극 중 특수부대 출신이자 억울한 피해자들을 대신해 가해자들을 단죄하는 택시기사로 분해 악당 사냥의 메인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이 과정에서 이제훈은 거구의 장정들도 혈혈단신으로 맞서는 무적의 전투력과 카 액션의 진수를 선보였다. 특히 김도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N도기’로 불릴 만큼 화제를 모았던 부캐 퍼레이드. 젓갈 도적, 기간제 교사, 웹하드 회사 직원, 조선족 연기까지 타깃에 접근하기 위해 펼치는 위장 전술로 전방위적 활약을 펼쳤다. 시청자들을 열광시킨 숱한 명장면들이 이제훈였기에 가능했을 만큼 그는 액션, 운전, 위장은 물론 훈훈한 비주얼에 살벌한 사냥꾼 본성을 지닌 김도기의 매력을 극대화하며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모범택시’의 가장 큰 힘은 배우들의 하드캐리였다. 어느 하나 평범하지 않은 ‘모범택시’ 캐릭터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녔고 주조연을 막론한 배우들은 탄탄한 연기와 찰진 캐릭터 플레이로 이를 완성했다.
김의성은 무지개 운수와 파랑새 재단의 대표를 겸임하는 장성철로 사적 복수 대행 작전을 이끄는 한편 피해자와 그 가족을 보살피는 다면적인 연기를 통해 중심 서사를 이끌었다. 이솜은 열혈똘검 강하나를 통해 자신의 굳건한 신념을 바탕으로 정의 구현에 힘쓰는 열정에서 그토록 믿었던 법에 배신당하고 소중한 동료를 잃은 아픔까지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표예진은 안고은을 통해 통통 발랄한 막내 온 탑 해커 연기에서 불법 유출 동영상 피해자를 언니로 둔 동생으로 펼친 오열 연기까지 반전 매력을 선보였다.
극의 웃음 한 축을 담당한 엔지니어 콤비 최주임 역의 장혁진, 박주임 역의 배유람의 활약도 대단했다. 또한 무지개 운수의 사업 파트너에서 끝판 빌런까지 변화무쌍한 백성미를 변주한 차지연의 열연도 빛났다. 여기에 각 에피소드를 담당했던 빌런들 또한 차원이 다른 시너지를 선보였다. 사회 사업가의 가면을 쓴 악덕 고용주 박주찬 역의 태항호, 일진 고등학생 박승태 역의 최현욱, 대한민국 웹하드 1등 회사 유데이터의 회장 박양진을 폭발적인 메소드 연기로 완성한 백현진, 이제훈의 미남계에 홀린 보이스피싱 우두머리 림여사 역의 심소영까지. 빌런들의 하드캐리는 매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웃음을 이끌었다.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