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서경이 만난 사람]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4차산업혁명 대·중기 협력 중요…선진국 가려면 동반성장 필수"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경쟁국들 이미 '고가·고품질 트랙'서 경기, 한국도 방향전환 시급

匠人들 중심돼 경제 이끈 독일식 상생협력 모델은 우리와 거리

정부 '공정경제' 동반성장과 비슷하지만 추상적…개념 명확히 해야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 가운데 청년 실업, 양극화 심화, 중산층 붕괴, 출산율 저하 등은 심각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 가운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유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력을 강요하고 있어 동반 성장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입니다. ‘동반 성장’이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우리 경제의 생존 전략일 수밖에 없습니다.”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동반성장위원회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협력, 임금 격차 해소, 상생, 동반 성장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동반 성장이 선진국으로 가는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권 위원장은 평소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만나면 협력 기업인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지금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대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위치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라”며 “대기업의 협력 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비용 경쟁, 즉 가격 경쟁을 높일 수 있는 능력만을 키워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가격 경쟁으로만 세계시장에서 승부하겠다는 것은 곧 선진국이 되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경고한다. 이제는 방향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비용 경쟁, 가격 경쟁만 하겠다는 것은 물건을 싼값에 팔아서 생존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곧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트랙을 달리는 육상경기에 비교했다. 그는 “우리는 저렴한 땅값에 싼 인건비, 저비용으로 물건을 만들어 싸게 파는 전략으로 지금까지 왔고 이런 방법이 통해 단군 이래 지금 가장 잘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런데 여기까지 열심히 쫓아와 선진국의 덜미를 잡으려고 보니 선진국들은 이미 주위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가 뛰는 트랙이 아닌 다른 트랙으로 이미 옮겨 경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선진국들이 트랙을 옮긴 것은 한국에 따라잡힐 것 같으니 다른 방법으로 먹고살기 위해 트랙을 바꾼 것”이라며 “우리는 ‘저가 트랙’에서 상품을 생산할 때 선진국들은 고비용에 고품질의 상품을 만들어 높은 값에 파는 ‘고가 트랙’으로 갈아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방향 전환이 시급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권 위원장이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위치는 현재 ‘저가 트랙’과 ‘고가 트랙’의 중간이다. 권 위원장은 우리 경제가 자칫 방향성을 잃을 수 있다고 걱정한다. 특히 중국과 같이 우리나라를 바짝 뒤쫓고 있는 국가에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에서 지금과 같은 전략만 고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권 위원장은 “과거 조선업과 관련해 스웨덴의 선반 전용 크레인은 세계 최대 규모였는데 이를 우리나라가 차지했다”며 “그런데 지금 스웨덴은 선박 설계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는 트랙을 갈아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철강 산업을 보면 중국이 강판 분야에서 우리를 바짝 추격하는 상황인데 우리는 언제까지 강판만 만들어 팔 것이냐”며 “철강도 고부가가치화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철강 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빨리 전환하는 게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트랙 전환’은 동반 성장과도 맥락을 함께한다는 게 권 위원장의 지론이다. 그는 2018년 2월 제4대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동반 성장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동반 성장론을 펼쳐왔다. 2003년 노동부 장관으로 취임한 후 1년여간 재임할 당시 동반 성장의 중요함을 설파했다.

그는 “노동부에 있을 때 대기업 CEO들로 구성된 경제 단체장들과 만나면 가성비 경쟁이 한계에 왔음을 자주 이야기했다”며 “가성비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 방향 전환을 강조했는데 이는 곧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게 바탕이 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동차 산업을 예로 보면 완성된 자동차를 만들 때 부품이 3만여 개 안팎으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각각의 부품이 그 자동차의 품질을 좌우하고 이는 곧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이라면서 “대기업은 중소기업으로부터 부품을 받아 최종적으로 완성차를 만들어내니 납품 받는 부품의 품질이 좋아야 함은 당연하며, 결국 고품질의 완성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동반 성장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독일은 기업의 상생 협력을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일부에서는 독일의 상생 협력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아 ‘독일통’으로 불리는 권 위원장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독일 모델은 우리와 다소 맞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그는 “독일은 중세 시대부터 소규모의 장인들이 중심이 돼 경제를 이끌어왔고 이는 중소기업들이 성장해서 대기업이 된 구조가 됐다”며 “그런데 우리는 빠른 성장을 위해 처음부터 대기업을 육성한 구조이기 때문에 독일로부터 동반 성장의 결과는 배울 수 있겠지만 그 정책을 배우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오래전부터 동반 성장, 상생을 이야기해온 그는 지금도 대기업 CEO들을 만나면 여전히 동반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기업의 협력 기업들이 지금 수준의 경쟁력에 머물러 있으면 대기업 역시 현 수준에서 더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대기업 CEO를 만나면 ‘대기업의 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위치를 선점하려면 협력 기업의 경쟁력도 끌어올려야 한다’고 항상 이야기한다”며 “협력 기업인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의무도 있지만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상생의 방법을 피력했다.

권 위원장은 현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 경제가 동반 성장과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그 개념이 추상적인 점도 많아 이는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공정한 경제를 만들자는 정부의 정책이 어떤 차원의 주장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권 위원장은 “공정 경제는 동반 성장과 같은 말이라고 보는데 이 필요성이 당위적 차원의 주장인지 방법론적으로 피할 수 없는 생존 전략인지 명확한 선을 제시하는 데 부족하다”며 “공정 경제 이야기를 듣는 경제주체는 ‘착하게 기업 경영을 하라’는 것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 ‘착한 경영’은 기업이 성장하는 요소 중 하나인데 이런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3년째 동반성장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권 위원장의 임기는 이제 1년가량 남았다. 그동안 나름대로 성과도 냈지만 아쉬운 점도 남아 있다. 동반성장위원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지향성은 큰 반면 실제 하는 업무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그는 전망한다. 그는 세계시장에서 경쟁 방법이 바뀌었음을 빨리 인지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위원장은 글로벌 경영 환경을 보면 기업 간의 경쟁에서 기업 생태 간의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우리나라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고 또 세계시장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조언한다. 권 위원장은 건강하고 효율적인 기업 생태계를 주문한다.

“세계시장의 경쟁은 그 기업 생태계가 충분히 건강하고 효율적인지가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기업 생태계를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동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동반 성장이라는 말을 너무 확대하면 공허해집니다. 개인과 개인의 동반 성장, 지역과 지역의 동반 성장 등 동반 성장의 범위는 넓은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는 비대면 업무 등이 확대되는 등 4차 산업혁명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4차 산업혁명 속도가 빨라질 것이고 동반 성장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기회로 작용할 것입니다.”

◇He is···

△1949년 대구 출생 △1968년 경북고 △1973년 서울대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 학사 △1975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경제학 학사 △1979년 동 대학 경제학 석사 △1984년 동 대학 경제학 박사 △1998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2000년 사단법인 대구사회연구소 소장 △2003년 사회복지법인 더불어복지재단 이사장 △2002~2003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문화여성분과 간사 △2003~2004년 20대 노동부 장관 △2005~2008년 14대 단국대 총장 △2008~2013년 단국대 상경대 경제학과 교수 △2018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대담=홍병문 성장기업부장 hbm@sedaily.com

정리=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

사진=성형주 기자

/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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