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2.6% 올랐다. 지난 2012년 4월 이후 9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작황 부진과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에 농축수산물 가격이 두 자릿수 상승세를 이어갔고 국제 유가 급등으로 공업 제품 가격도 올랐다. 개인 서비스 가격도 오름세다. 경기회복의 온기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지 않은 상황에서 농축수산물의 가격 오름세가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애그플레이션 우려도 제기된다.
2일 통계청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7.46(2015년=100)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2.6% 올랐다. 올 4월(2.3%)에 이어 두 달 연속 2%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정부는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기저 효과(전년 5월 -0.3%)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했지만 수요와 공급 요인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여기다 여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하반기 30조 원에 이르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추진하는 점도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금융시장에서는 소비자물가가 정부의 물가 안정 목표인 2%를 계속 넘어설 경우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일단 2분기 물가가 2% 상승률을 기록하다가 하반기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고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9월까지 물가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5월 물가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유가 오름세다. 석유류는 지난해 국제 유가가 급락한 데 따른 기저 효과까지 더해져 2008년 8월(27.8%) 이후 가장 높은 23.3%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주요 석유수출국의 ‘증산 시그널’에도 국제 유가가 70달러를 넘어섰고 오는 3분기에는 8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1일(현지 시간) 8월 물 북해산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1.34% 오른 70.25달러에 거래됐다. 장중 한때 71.3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브렌트유가 70달러대를 넘어선 것은 2019년 5월 이후 2년여 만이다.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10개 산유국 연합)의 ‘감산 완화 방침’에도 유가가 오른 것은 증산에 대한 신호가 없다는 점과 원유 수요 증가세가 공급보다 가파를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도 반영됐기 때문이다.
장바구니 물가로 불리는 농축수산물 가격은 작황 부진과 AI 여파로 12.1% 올라 올 1월 이후 5개월 연속 두 자릿수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파는 130.5% 올랐고 마늘(53.0%)·달걀(45.4%)도 크게 올랐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농산물 공급 대책이 실패했다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 개인 서비스(2.5%)를 중심으로 서비스 물가도 상승세를 보이며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도 1.5% 올랐다. 2017년 9월(1.6%)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정부는 물가 상승세가 일시적 현상이라는 판단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5월 소비자물가 오름폭이 확대된 것은 기저 효과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며 “기저 효과를 제외한 전월비로 보면 물가 상승률은 0.1%로, 연초 AI 발생, 한파 등으로 확대됐던 전월비 물가 흐름이 최근 안정세에 접어든 모습”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 확대 등으로 수요 요인이 더 강해질 경우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의 고물가 상황이 원자재·원유·농축수산물의 공급 충격이라면 백신 접종이 끝날 11월에는 수요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인플레이션이 크게 올 확률이 높다”고 봤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농축수산물 가격 등 일시적 요인이 줄더라도 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수요 요인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금방 줄어들 것 같지 않으며 지속해서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리 인상 카드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광의통화(M2) 증가율과 소비자물가는 1년 반의 시차를 두고 연동된다”며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소비자물가가 3%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M2는 시중통화량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로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등 즉각 현금화가 가능한 화폐에 더해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등 현금화가 빠른 금융 상품을 모두 아우른다. 신 교수는 “지난 2년간 M2 증가율이 3%에서 11%로 올라왔다”며 “금리 인상을 고려해야 하는데 정치권에서 금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 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