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서울 상계고등학교 시청각실에는 5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유럽 신화를 주제로 특별한 인문학 강좌가 열렸기 때문이다. 김윤아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영화평론가)가 강의를 맡아 진행했다. 김 교수는 유럽 신화의 특징을 영화와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예를 들어 설명해 학생들의 관심을 유발했다. 강의 내용에 자신이 알고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자 학생들은 방과후의 고단함도 잊고 강의에 몰입하는 모습이었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공동체는 저마다의 신화를 갖고 있다”며 “자신이 어디서 온 사람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리스 신화와 켈트 신화, 북유럽 신화의 특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그리스 신화는 지중해 연안의 날씨처럼 밝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게 특징이라고 설명한 김 교수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은 불멸의 존재로 영원히 산다”고 말했다. 이어 “그 보다 조금 높은 위도의 아일랜드와 영국섬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켈트 신화에서 신들은 인간과의 싸움에서 져 인간에게 땅을 내주고 몸을 숨겼다”며 “숨은 신들은 가끔 요정의 모습으로 나타는데 여러분들이 잘 아는 피터팬의 팅커벨, 해리 포터의 도비, 반지의 제왕의 엘프 등이 그들”이라고 말하자 학생들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눈치였다.
얼어붙은 바다 위쪽에 퍼져있는 북유럽 신화는 혹독한 기후풍토 탓에 운명적이고 비장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 김 교수는 “신족과 거인족은 매일 서로 죽일 듯이 싸웠는데 이들은 마지막 전쟁 ‘라그나뢰크’로 공멸했다”며 “‘어벤져스:엔드게임’과 ‘반지의 제왕’에서의 전투 장면이 라그나뢰크를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각 신화들의 특징에 대한 설명을 마친 김 교수는 “문명이 발달하기 전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생긴 신화는 수천 년을 지나 오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더해지고 없어지며 강력한 이야기로 다듬어졌다”며 “신화가 대중문화 콘텐츠로 활용되는 것도 수천년을 통해 검증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학생들에게 “신화를 알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노원평생학습관이 마련한 김 교수의 ‘유럽신화 완전 첫걸음’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원격 강의 등 비대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상계고 1학년 정현민 군은 “신화를 통해 북유럽 사람들의 정서와 켈트족의 역사에 대해 알게 돼 흥미로웠다”고 강의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1학년 이선우 군은 “켈트 신화는 다소 생소했는데 내가 알고 있던 요정들이 신화에서 나왔다는 게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박형건 상계고 사서교사는 “평소 학생들이 신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학생들이 다양한 신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역량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고인돌 2.0은 올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의 사고를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